[영화로 보는 세상] 사이공·카불, 역사는 반복된다 ‘모가디슈’

입력 2021-08-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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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1975년 월남이 패망했다. 미국 대사관 직원들은 헬리콥터를 타고 아비규환의 사이공(현 호찌민)을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친미 정권이 무장조직인 탈레반 세력에게 무너졌다. 역시나 수도 카불에서도 비슷한 탈출 모습이 재현되었다.

30년 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남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목숨을 걸고 탈출을 감행했던 실화를 소재로 만든 영화 ‘모가디슈’의 모습은 마치 사이공과 카불의 아프리카판처럼 보인다. 반군에 의해 권력을 잃은 소말리아 바레 정권은 국가 자산을 챙겨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 버리고, 반군들은 친정부 성향인 각국의 대사관을 습격한다. 류승완 감독은 한국 영화의 지평을 마침내 극도로 혼란스런 아프리카 대륙으로까지 열어젖혔다. 당시의 남북 정부는 유엔 가입을 위해 사활을 걸고 뛰고 있었고 다수의 투표권을 가진 아프리카 대륙에서 치열한 득표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한신성 주소말리아 한국 대사(김윤석)와 안기부 출신의 강대진 참사관(조인성), 북한의 림용수 대사(허준호)와 태준기 참사관(구교환)은 서로 역정보를 흘리거나 언론플레이를 하면서 상대방에게 흠집을 내고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여념이 없다.

소말리아 정부는 극도로 부패하였다. 한국 대사에게 이 나라 장관은 거침없이 뇌물을 요구한다. 그것도 달러로만.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고 약탈과 방화는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정부군이든 반군이든 물과 전기를 공급해주고 빵을 준다면 우리 편이다. 결국 반군이 모가디슈에 입성하면서 내전은 격화되고 통신과 항공이 끊겨 모두가 고립되고 만다. 사정이 더욱 안 좋은 건 북한 대사관 사람들이다. 자존심을 접고 한국 대사관을 찾아가 생사고락을 함께해야 할 처지가 된다. 여기에서 서로가 부딪치거나 녹아드는 에피소드를 배치한다. 유명한 깻잎 장면도 여기서 등장한다. 억지스럽지 않게 같은 민족임을 슬며시 환원하려고 노력한다. 영화의 스케일과 촬영 기술에 대한 호평도 많다. 차량 액션도 실망시키진 않았다.

하지만 뭔가 허전하다. 등장 인물들에 대한 감정이입이 쉽지 않고 대사관에 갇혀 있는 두 나라 한 민족 사람들의 감정선과 공감대를 치밀하게 직조하는 데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눈물선을 자극하기까지에는 이르지 못한다.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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