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9일 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가석방하기로 하면서 삼성의 투자 시계가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는 삼성이 그동안 미뤄왔던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 등 성장동력 마련을 위한 의사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먼저, 반도체 초격차를 이어갈 20조 원 규모의 미국 반도체 투자 결정이 장고(長考) 끝에 매듭지어질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미국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을 추가로 짓겠다고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투자 계획 발표는 수개월째 미뤄져 왔다. 거액의 해외 투자 결단을 위해 이 부회장이 직접 해외 고위 의사결정권자들을 만나 논의해야 하지만, 경영 복귀가 어려워지면서 삼성의 결단을 머뭇거리게 했다는 분석이다.
이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하게 되면 삼성의 신속한 반도체 투자 결정이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파운드리 경쟁사인 대만 TSMC는 삼성전자와의 점유율 격차를 더 벌려가고 있고, 인텔은 삼성전자와 TSMC가 양분하고 있는 파운드리 시장에 재진출을 선언하며 대규모 투자와 M&A로 삼성을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삼성전자의 적극적인 투자가 적기에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의 전략적인 M&A도 다시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2017년 이 부회장이 구속됐을 때부터 새로운 대형 M&A를 단 1건도 성사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처음 구속되기 3개월 전에 자동차 전장업체 미국 하만을 인수한 이후 ‘빅딜’은 실종 상태다.
삼성전자가 3년 내 의미 있는 M&A를 하겠다며 인공지능(AI)·5G(5세대 이동통신)·전장 등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거듭 밝힌 만큼 이 부회장의 지휘 아래 ‘빅딜’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 부회장은 2014년 방산과 화학을 한화그룹에, 2015년 남은 화학사업을 롯데그룹에 매각하고, 2017년 하만 인수 등 굵직한 빅딜을 성사시킨 바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주목받은 삼성 바이오 사업의 공격적인 외연 확대도 예상된다. 삼성은 SK와 함께 ‘K-바이오’의 주축으로 거론되며 국내 바이오 산업을 한 단계 도약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모더나와 계약을 체결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현재 1, 2, 3공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2023년까지 4공장을 신설도 추진하고 있다.
삼성의 준법경영 움직임도 더 강화된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을 겪으며 회사 차원의 준법경영 의지를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특히, 삼성의 준법 경영을 감시하는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위상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준법위를 세우고 해외 출장 전과 연초 등 수차례 면담을 이어가며 준법위 활동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부회장은 준법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지난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고, 수감 중에도 준법위의 활동을 계속 지원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위원장과 위원들께는 앞으로도 계속 본연의 역할을 다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준법위는 반년 넘게 이어진 이재용 부회장의 ‘옥중 부재’ 상황에서 삼성그룹과 접점을 늘리기 위한 활동을 지속해왔다. 이 부회장 구속 직후인 1월 말 준법위는 관계사 대표 등 최고경영진과 간담회 자리를 통해 준법ㆍ윤리경영을 재차 강조했으며, 4월에는 준법위 내 노동소위원회와 관계사 노사관계 자문그룹이 만나 준법경영 연장선에서 ‘무노조 경영 폐기’ 전략을 점검했다.
지난해 6월과 올해 5월, 2년 연속으로 삼성그룹은 자체적으로 삼성그룹 사장단과 인사팀장을 대상으로 발전적 노사관계 구축을 위한 강연회를 개최했다. 작년의 경우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위원장이, 올해는 양대 노총의 전직 위원장(김동만 전 한국노총 위원장ㆍ백순환 민주노총 전 비대위원장)이 각각 연사로 자리했다.
준법위는 오는 11일 김지형 위원장이 삼성 7개 관계사 부사장들을 대상으로 직접 강의하며, 삼성그룹의 준법 문화 정착과 윤리경영 제고에 집중한다.
활동 성과도 가시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오는 12일 창사 이래 처음으로 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한다. 지난해 5월 이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통해 “삼성에서 더는 무노조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겠다”라고 밝힌 지 1년 3개월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