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할당제 불공정" 주장 있지만 단편적인 성별 대결 서로에 상처
안산 선수 헤어스타일 놓고 '페미 논쟁' 도 넘은 젠더갈등의 단면
페미니스트는 낙인이 됐다. 성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본래 의미와 달리 반(反)페미니즘 세력이 페미니즘을 ‘남성 혐오’라고 왜곡하면서다. 최근 일부 남성들을 중심으로 도쿄올림픽 양궁 3관왕 안산 선수가 금메달을 반납해야 한다는 온라인 폭력이 번지고 있다. 좋은 실적을 거뒀음에도 안 선수는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그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안 선수가 진짜 페미니스트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페미니즘은 불경한 것이므로 쇼트커트와 같은 낌새만 보여도 낙인을 찍고, 페미니스트는 능력을 인정해 줄 수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런 생각은 여성에 대한 우대 정책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과 맞닿아있다.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인정할 수 없으므로 페미니즘 역시 우리 사회에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투데이가 만난 2030 세대 남성들도 여성이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김민철(29세, 가명) 씨는 “여성은 사회적 강자”라며 “현재 20대 여성들은 더 많은 보호를 받고 이득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세훈(27세, 가명) 씨와 박영호(28세, 가명) 씨 역시 “여성은 절대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라며 “과거와 현재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했다. 과거와 비교해 여성의 지위가 더 높아졌다는 뜻에서다. 허나 실상은 이들의 인식과 달랐다.
◇대기업 10명 중 2명, 공기업 3명 중 1명 여직원 = 2005년 청년층(15~29세)에서 남녀 고용률이, 2009년엔 남녀 대학 진학률이 역전됐다. 통계만 놓고 따지면 젊은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질 좋은 일자리로 분류되는 화이트칼라 취업 시장을 살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금융 정보 제공 기업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자산 2조 원 이상 기업 227개의 전체 직원(98만1416명) 중 여성 직원(23만6782명)은 24.1%다. 자산이 가장 많은 5개 기업(KB금융지주,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삼성전자)의 여성직원 비율은 17%로, 전체 평균보다 낮았다. 소위 말하는 알짜 대기업은 남성직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한 것이다.
실제 기업 10개 중 4개가 특정 성별을 선호하고, 선호하는 성별은 주로 남성이라고 답했다. 구인ㆍ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2019년 기업 493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1.8%의 기업이 특정 성별을 선호한다고 했다. 선호하는 성별은 남성이 70.9%로 여성(29.1%)보다 2배 이상 많았다. 그 이유로는 ‘회사 특성상 해당 성별에 적합한 직무가 많아서’, ‘야근, 출장 등의 부담이 적어서’, ‘근속 가능성이 더 커서’ 등이었다.
상황은 공기업도 마찬가지다. 이투데이가 370개의 공기업ㆍ준정부기관ㆍ기타 공공기관을 전수조사한 결과 지난해 전체 임직원(43만5642명) 중 여성 정규직(14만5329명)은 33.3%였다. 평균 연봉 1억 원 이상인 14개 공기업ㆍ준정부기관ㆍ기타 공공기관의 여성 직원 비율은 36.7%였다.
◇젠더 공정을 위해 = 전문가들은 남성들이 취업 시장의 불공정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정희원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 교수는 “지금 2030 세대들은 노력에 대한 기본적인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느끼는데 ‘여성보다 남성이 유리하다’고 말하는 것이 통할 리 없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취업 시장에서 여성들이 경험하는 차별(불공정)은 개별적이거나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분명한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남성들) 주변에 자신보다 똑똑한 여자 친구들이 많아 그들이 약자인지 (의문을 품는) 얘기는 할 수 있다”며 “하지만 여성이 노동 시장으로 나오고 결혼을 하면 사회에 의한 편견과 폭력 상황에 놓여 약자가 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해결책으로 능력대로 줄을 세워 뽑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신하영 세명대학교 교수는 “구조적인 문제를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실력으로 해야 한다는 풍조가 계속되면 장애인, 탈북민 등 소수자 정책이 하나하나 제동 걸리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 교수는 “그렇기 때문에 어퍼머티브 액션(소수자 우대 정책)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성별 대결을 해봤자 두 성별에 이득이 될 게 없다”며 “(이들이) 합의점을 찾아갈 수 있도록 정부는 불공정이 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