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투자자 줄줄이 은행 노크
‘빚 얼마냐’보다 위험 관리 집중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방안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계부채 규모가 이미 1600조 원을 넘어선 만큼 총량 억제책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가계부채 숫자에 얽매인 것은 주택 가격을 떨어뜨리는 데만 몰두하고 있는 부동산 정책을 닮아간다는 질책도 나온다.
3일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19년 4분기 가계대출(판매신용 제외)이 1500조 원을 돌파(1504조5736억 원)한 이후 1년 만인 작년 4분기에 1600조 원(1631조4801억 원)을 넘어섰다. 이 속도라면 2024년에는 가계대출이 2000조 원대에 진입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총량 관리에만 매몰돼 있으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가계부채 유발 요인이 다양해진 만큼 더 세밀한 원인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유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가계부채 관리 방안은 개별 금융기관에 대한 위험관리 차원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가계부채 정책이 부동산 정책과 비슷해지고 있다”며 “마치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방식으로 가계부채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데 금리 상승기인 만큼 금융시장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가계부채를 관리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도 “가계부채 관리 수단을 퍼센트(%)로 설정할지, 금액으로 설정할지는 중요한 이슈가 아닌 것 같다”며 “부동산 문제, 개인의 투자 등 대출 증가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코로나19 시기에 가계부채가 왜 늘어났을지 연구를 해야 한다”며 “코로나 시국에 가계대출이 증가한 것은 코로나19 영향으로 경제 사정이 좋아진 사람과 나빠진 사람이 극명해졌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누군가의 부채는 누군가의 자산”이라며 “경기가 갑자기 좋아진 사람은 저축을 늘렸고, 은행은 늘어난 예금을 운용해야 하는데 돈이 필요한 자영업자 등이 대출받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덧붙여 “소득 양극화가 심해지면 부채도 늘 수 있다”며 “정부의 재난지원금을 코로나19 피해를 받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지원을 해주면 가계대출이 그나마 감소하지 않을까 싶다”고 조언했다.
정부의 개입이 과도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출은 금융회사와 차주간 거래인만큼 민간의 영역인데 국내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개입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조동철 교수는 “가계대출은 기본적으로 민간의 영역”이라며 “도덕적 해이가 생기지 않도록 정부가 정책을 하는 것은 동의하지만 대출 건수를 하나씩 관리하는 것은 시장경제체제에서 맞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금융당국의 역할은 룰 세팅이라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이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면 금융회사가 그 범위 내에서 회사 상황에 맞게 대출을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총부채상환비율(DTI),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과 같은 룰을 주고 그 안에서 금융회사, 차주 개개인이 대출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라며 “부채 관리를 위해 룰 세팅을 조금 더 빈틈없게 할 수 있지만 금액 자체를 가지고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이인호 교수는 “지금 가계부채를 급속하게 줄이긴 어려울 것”이라며 “제일 좋은 시나리오는 가계부채가 더 이상 늘지 않으면서 소득은 증가해 (가계부채가) 연착륙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