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 개막 연기는 분명 위기였다. 한국에서 세계 최초 라이선스 공연을 선보이는 뮤지컬 '비틀쥬스'를 향한 기대감과 비례할 정도였다. 그만큼 완성도나 흥행성도 관심사였다. 미국식 유머가 통할지도 의문이었다. 결과는 합격점이다. 기대 이상이라는 평이 나온다. 관객들은 '비틀쥬스' 마법에 홀렸다.
"저 세상 텐션 보러 오실래요?" 98년 동안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돌고 있는 비틀쥬스 역을 맡은 유준상을 만났다.
'비틀쥬스'는 팀 버튼 감독의 동명 영화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2019년 4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다. 초연 당시 제작비 250억 원이 투입될 정도의 대작이다. 초연 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한국에 상륙해 지난 6일 개막했다. CJ ENM이 제작을 맡았다.
대본을 받아들었을 때 유준상의 첫 느낌은 '재밌다'였다. 하지만 연습에 들어가자마자 후회막급이었다는 전언이다. 비틀쥬스가 중심이 되는 작품인 만큼 유준상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체력 소모 역시 상당한 작품이다. 격렬한 연습으로 66.5kg까지 몸무게가 줄었다. 유준상은 어떻게든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버텼다.
"이제는 그 힘든 시간을 덜어냈어요. 작품을 잘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혼신의 힘을 다해 연습했거든요. 연습할 때 마스크를 쓰는 것도 운동선수들이 차는 '모래주머니'라고 생각했어요. 3~4주가 지나니 어느 순간 춤을 출 때 몸이 가벼워지더라고요."
'비틀쥬스'의 관전 포인트는 다채롭게 변화하는 무대장치와 다양한 특수 효과다. 그의 손짓 하나에 배경이 바뀌고 사람들이 날아간다. 무대, 소리, 대사, 손짓, 음향효과가 완벽하게 세팅돼야 가능한 일들이다.
"손짓 하나에도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가 명확해서 좋았어요. 외국 스태프도 '브로드웨이에서도 안 해본 것을 처음 해본다'고 말했어요. 한국 제작사에서 많은 돈을 들여 기계의 세팅 값을 바꿨죠. 대사를 허투루 할 수 없어요. 정확하게 대사를 하고 손을 움직여야 해요. 그래서 더 철저히 연습할 수밖에 없었고요."
유준상은 '비틀쥬스'가 미국식 스탠딩 코미디일 거라는 일각의 편견에 대해 고개를 저었다. 작품을 분석하며 유준상이 찾은 '비틀쥬스'의 메시지는 '힘든 인간의 삶을 모두 잘 버티고 있다'는 위로였다.
"세계 어디에서 펼쳐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유령이 인간 세상에 와서 자신의 이름을 세 번 부르면 모두가 자신을 볼 수 있는 상황 설정이 재밌는데, 유령이면 다 될 줄 알았던 것들도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게 없거든요. '죽음을 어떻게 이렇게 명확하게 담았지?' 싶더라고요. 관객도 이야기 자체가 가진 매력에 푹 빠질 수밖에 없죠."
유준상은 정성화와 함께 오디션을 통해 배역을 따냈다. 이젠 오디션 없이 캐스팅만으로 작품에 출연할 정도로 티켓파워를 가진 그 역시도 미국 현지 창작진이 진행한 오디션에 참여했다.
"오디션을 정말 많이 봐왔지만,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했어요. 오랜만에 본 오디션인데 크게 떨리진 않았어요.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했어요. 해외 창작진의 오디션도 국내 창작뮤지컬의 오디션과 비슷한 점이 많더라고요. 우리 뮤지컬도 많이 발전했다는 걸 알게 됐죠."
유준상은 "쇼 머스트 고온(Show Must Go On)"을 외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힘든 시기 속에서도 공연이 계속되는 이유는 공연을 통해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인생을 배운다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된다는 것을 믿는다고 했다. 지난 4월 한국뮤지컬협회에 1억 원을 기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유준상은 "코로나19로 힘든 상황 속에 있는 우리의 마음 속에 '비틀쥬스'가 큰 울림으로 다가갈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무대는 저와 평생 함께 할 공간이에요. 무대에서 얻는 에너지들이 드라마, 영화에서도 펼쳐지는 거죠. '비틀쥬스'를 통해 20년 넘게 해온 노력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체력 관리 잘하면 60세까지 '비틀쥬스'로 뵐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