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중구에 있는 L7 명동 버블라운지에서 박기웅과 만났다. 그림에 대한 그의 애정은 '찐(진짜)'이었다. 드라마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 촬영이 새벽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강행군 속에서도 틈만 나면 붓을 집어 든다.
"그림을 그리면서 받는 스트레스도 있어요. 하지만 한 번 앉으면 12시간이 그냥 지나가 있어요. 밥을 두 끼 거르는 것도 예사죠. 건강에 안 좋은 것 같아요. 하하. 많은 작가분이 이렇게 그림을 그리실 거예요."
박기웅은 자신은 배우와 화가로서 정체성을 모두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두 가지 일을 모두 해내기 위해 에너지를 150% 끌어올리고 있는 요즘이다.
"요즘 피곤한데 기분이 너무 좋아요. 20시간 넘게 촬영하고 완전히 지친 상태인데도 고민해요. '집에서 그림 그릴까' 하고요."
동료 배우들에게도 그림을 그릴 것을 추천하고 싶단다. 배우와 작가 일은 완전히 성질이 다른 듯하지만, 그래서 상쇄되는 효과가 있다. 각자의 영역에서 소모되는 지점을 서로 채워준다.
"배우 일과 작가 일이 이렇게 합이 잘 맞을 줄 몰랐어요. 연기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동 작업이기 때문에 크루들하고 사이가 좋아도 스트레스가 있을 수도 있고, 예기치 못하게 좋은 결과가 나오는 등 희열을 느낄 수 있죠. 그림은 저 자신이 주체가 돼요. 조물주가 되는 거죠.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공간이 형성돼요. 전문적으로 하지 않아도, 꼭 그림을 그려 보셨으면 해요."
박기웅은 연예인이기 때문에 득을 보는 것도 인정한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허투루 한다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다는 그다. 지금까지 인지도로 받은 관심을 완전히 깨부술 정도로 제대로 작업을 해내고 싶다고 했다.
"배우로 오랫동안 일을 해왔기 때문에 받는 관심도 당연히 있죠. 하지만 혜택과 함께 역차별도 존재해요. 좋은 그림을 그렸을 때, 훨씬 더 좋은 작업을 해냈을 때 오히려 차별을 받을 수도 있겠죠. 베네핏 받은 만큼 감수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약속드릴 수 있는 건 전 앞으로 더 좋은 작업을 할 거예요. 이렇게 저질러놔야 더 열심히 하겠죠?" (웃음)
배우로 데뷔하기 전 미술 입시 학원에서 소묘 강사로 일한 경력이 있어서인지, 그의 작품을 보면 소묘 성질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인물화에 멈춰있지 않다. 박기웅은 "비구상화가 어려워서 공부가 많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인물의 감정에 기준점을 맞추고, 알료를 배합하고 텍스처를 활용하는 식으로 자신만의 작품을 창조하고 있었다.
"제가 삐딱한가 봐요. 스탠다드를 존중하면서도 바꿀 수 있는 건 도전해보고 싶어요. 저 사실 입시 미술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 어떤 작가보다 입시 미술을 준비하는 원생의 그림이 제일 감동적이에요.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서 에너지가 느껴지니까요. 처음엔 공식화하면서 접근했던 연기처럼 미술도 그렇게 접근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앞으론 놀면서 하듯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박기웅은 대중예술인으로 산 지 19년 차가 된 프로다. 오랜 시간 대중예술 안에서 숨 쉬어온 만큼 미술 작업을 할 때도 대중적인 시선을 놓치지 않겠다고 했다. 경제 규모와 비교하면 턱없이 작은 한국 회화 시장을 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었다.
"저도 현실을 잘 알고 있어요. 주변에 아직도 화가를 지망하면서 다른 일을 하는 친구들도 있거든요. 시장이 더 커지려면, 기존에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 강요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림은 의식주가 아니잖아요. 세계적인 작가도 자신에게 감동을 주지 않으면 '본인에게는' 좋은 작품이 아니잖아요. 자신만의 줏대를 가지고 놀고 즐기셨으면 해요. 그럼 유입하는 이들도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
박기웅은 최근 김정기 작가와 롯데뮤지엄에서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 8점을 블록체인 전문 기업 비트베리 파이낸스에서 NFT(Non-Fungible Token·대체불가토큰)로 제작하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이달 28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코엑스 1층 B홀에서 열리는 '2021 어반브레이크'에도 참여한다. 8평 남짓한 그의 부수엔 그동안 해왔던 인물을 기반으로 한 작품 외에도 생애 최초 도전 작인 팝아트 등이 전시될 예정이다.
"원대한 꿈은 없어요.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정말 재밌게 그림 그리고 싶어요. 경직된 환경에서 꽤 오래 연기를 해서 그런가 봐요. 절대 경직되지 않은 박기웅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