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지인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서….” 취업난에 지원서를 쓸 곳이 마땅치 않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기대와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취업 준비생 10명 중 6명은 취업 의지가 없지만, 취업을 준비하는 척하는 ‘쇼윈도 취준생’이라는 최근 한 설문결과가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슬픈 자화상을 보여준다.
기자 초년생 시절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라는 갈등과 고뇌에 몇 번이나 직장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했던 기억이 새롭지만, 요즘처럼 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이고, 코로나19 사태로 취업의 기회마저 박탈당한 현실에서는 그런 고민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지난 5월 국민 경제에 대한 중앙은행 기여도가 높아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고용 책무’ 도입에 공감한다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발언이 왜 세간의 관심을 받았는지 이해가 된다.
‘일자리 정부’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일자리 진작책의 결과는 참담하다. 5월 취업자 수는 2755만 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61만9000명 증가했다. 취업자 수 증가에는 지난해 5월 취업자 수가 39만2000명 감소한 데 따른 기저효과도 작용했다. 기저효과로 늘어난 취업자 수만을 강조하며 실업률 4%대를 그냥 넘겨볼 수는 없다.
‘경제고통지수’는 10년 만에 가장 높았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이 통계청 자료를 바탕으로 계산한 결과를 보면, 지난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2.6%)과 실업률(4.0%)을 더한 경제고통지수는 6.6으로 집계됐다. 미국 경제학자 아서 오쿤이 처음 고안한 경제고통지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실업률을 합한 값으로, 국민이 느끼는 경제적 고통 정도를 쉽게 가늠할 수 있게 한 지표다.
한은법 1조에 는 ‘한국은행은 물가안정을 도모하고, 통화정책 수립할 때 금융안정에 유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사태 이후 경제 곳곳에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물가 안정 목표제의 이론적 배경이 된 필립스 곡선 가설은 오작동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기그(Gig)이코노미’를 한 원인으로 꼽힌다. 기그의 어원은 원래 재즈 공연에서 연주자들을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섭외하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정보기술(IT)과 공유경제 관련 산업이 발달하면서 이들 산업에서 기그이코노미가 나타나고 있다. 우버가 대표적이다.
금융과 실물의 분리대응 원칙은 옛 얘기가 돼버렸다.
어렵다고 미룰 일은 아니라 본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의원은 올해 한은법 1조 설립 목적 조항에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할 때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해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고용안정에 유의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개정안을 낸 바 있다.
논란은 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지난해 11월 한국국제금융학회에 의뢰해 만든 ‘새로운 정책 여건 변화에 대응한 한국은행의 역할 재정립 방안’의 보고서에서 “한은의 고용안정 목표 도입에 좀 더 시간을 두고 검토할 것”을 권고했다. 반면 한국금융연구원(KIF)은 ‘최근 한은법 개정논의와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서 한은의 딜레마를 지적하면서도 “고용 안정의 목적 추가가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감염병으로 패닉에 빠져 있다. 물가만 집착하는 고집불통 중앙은행은 더는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통화정책도 창의적이고 유연한 자세가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