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자외선(EUV) 공정이 첨단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4세대 D램 제품부터 본격적으로 공정 내 EUV 기술이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제품 양산 시기와 EUV 장비 도입을 두고 글로벌 메모리 업체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D램 1·2위 업체인 삼성과 SK는 이미 4세대 D램 공정에 이 기술을 도입했고, 후발주자도 연달아EUV 대열에 합류하기 위한 여정에 나섰다.
12일 SK하이닉스에 따르면 10나노급 4세대(1a) 미세공정을 적용한 8Gbit(기가비트) LPDDR4 모바일 D램을 이달 초부터 양산하기 시작했다. 하반기부터 스마트폰 제조사들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공급이 시작된다.
이 D램은 SK하이닉스의 D램 제품 중 처음으로 EUV 공정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앞서 SK하이닉스는 1y(2세대) 제품 생산 과정에서 EUV를 일부 도입해 안정성을 확인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초부터 EUV 공정 도입 의지를 강조해왔다. 2월 국내외 생산 시설 중 최대 규모인 이천 M16을 준공하면서는 ‘EUV 전용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했고, 같은 달 네덜란드 ASML과 5조 원 규모의 EUV 스캐너 장비 구매 계약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후 올해 줄곧 메모리 반도체 산업 호황이 점쳐지자, 내년 계획한 투자분 가운데 일부를 앞당겨 집행하는 등 시설투자도 가속해왔다.
SK하이닉스 1a D램 TF장 조영만 부사장은 “이번 1a D램은 생산성과 원가경쟁력이 개선돼 높은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는 제품”이라며 “EUV를 양산에 본격 적용함으로써 최첨단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UV 노광 기술은 극자외선 광원을 사용해 웨이퍼에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기술이다. 기존 불화아르곤(ArF) 공정보다 10배 이상 더 세밀한 회로 구현을 가능하게 한다. 인공지능(AI)·5세대(5G) 이동 통신·자율주행 등에 필요한 최첨단 고성능·저전력·초소형 반도체를 만드는데 필수적이다.
생산성도 향상돼 원가 경쟁력도 높일 수 있다. 실제로 SK하이닉스가 이번에 양산하는 4세대 D램은 이전 세대(1z) 같은 규격 제품보다 웨이퍼 한 장에서 얻을 수 있는 수량이 약 25%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EUV 공정은 초미세 공정 경쟁이 치열한 비메모리 분야에서 도입 움직임이 먼저 일었다. 하지만 D램에서도 점차 미세화 공정 중요도가 높아지면서 EUV 대열에 합류하려는 메모리 업체들의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일찍이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에서 EUV 공정을 도입한 삼성전자는 작년 3월 D램 1세대 10나노급(1x) DDR4 D램 샘플 100만 개 이상을 고객사에 공급하며 경쟁 시작을 선언했다.
이어 같은 해 8월부터 1z LPDDR5 모바일 D램을 EUV 기반으로 생산했고, 올해 하반기엔 EUV 공정을 적용한 4세대 D램도 양산 계획이다.
올해 초 삼성과 SK보다 앞서 4세대 D램을 출시해 주목받았던 업계 3위 마이크론은 아직 EUV 공정을 도입하지 못했다. 다만 최근 콘퍼런스 콜에서 "2024년까지 D램 제조에 EUV 기술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히는 등 기술 개발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업계 4위인 대만 난야도 올해 4월 100억 달러(11조4500억 원) 규모의 신공장 증설 계획을 밝히면서, 이 신공장에 EUV 장비를 도입하겠다고 언급했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올해 착공에 들어가 2023년 EUV 공정을 도입한 D램을 양산하게 된다.
안진호 한양대 재료공학과 교수는 "향후 2~3년간 첨단 반도체 업체들의 기술 경쟁 핵심은 EUV 공정 도입과 안정화 여부가 될 것"이라며 "기존 기술 패권을 쥐고 있었던 기업이라도 EUV라는 기술 변혁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도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