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강의실 전등은 모두 켜져 있지만,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까지 몰아내지는 못했다. 수십 명의 학생이 마스크를 쓰고 띄엄띄엄 앉은 것 말고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과 다를 게 없는 풍경이었다. 세로 폭이 두 뼘이 안 되는 책상. 책 한 권이면 꽉 찰 것 같은 좁은 책상 위에선 강사의 말을 받아적는 손이 분주했다. 책상 위 한 잔, 두 잔 쌓여가는 빈 음료수 컵은 공시생이 견디고 있는 무게감과도 같았다.
공시생들은 한곳만 바라본다. ‘합격’이라는 목표다.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정수진(가명, 26) 씨는 올해로 ‘공시생 2년 차’다. 정 씨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유로 ‘채용의 공정성’을 꼽았다. 정 씨는 “공무원 필기시험은 점수 자체가 투명하게 공개되기 때문에 사기업 채용보다 공정하다”고 말했다.
올해 서른 살인 김유진(가명) 씨는 사기업에 연거푸 낙방한 뒤 지난해 공무원 시험으로 방향을 틀었다. 김 씨는 “자소서와 면접이 중심인 사기업 시험엔 평가자의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차라리 필기 점수가 최종 단계까지 합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공무원 시험이 상대적으로 신뢰가 간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되는 최종 탈락에 이제 갈 곳도 없다”고 덤덤히 덧붙였다.
이들이 공무원이 되고 싶은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시험’에 기대하는 바는 같았다. 공무원 시험이 사기업 시험보다 공정하다는 것이다. 공무원 시험은 필기시험과 면접이 전부다. PT 발표, 실무면접 등 주관적 평가가 개입될 소지가 많은 사기업 시험과 다른 점이다. 누구나 필기시험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유일한 취업 관문이다.
취준생들은 ‘채용의 공정성’이 직업 선택에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4월, 취업 사이트 인크루트가 구직자 1075명을 대상으로 벌인 ‘공무원 취업준비 인식’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유에 ‘공정한 채용·승진이 보장돼서(8.2%)’가 4위로 꼽히기도 했다.
밤 9시 30분. 공시생들이 학원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노량진역 근처 보행교에서 바라본 한 학원 강의실 안에는 한 공시생이 학원 관계자에게 설명을 들으며 문제를 풀고 있다.
밤 9시 55분. 공시생을 비춰주던 전등이 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