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자 LTV 가능한 곳도 40% 불과…"정부 생색내기" 비난
정부가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을 돕겠다며 대출 한도 규제를 일부 완화했다. 하지만 정작 시장 상황과 맞지 않는 대출 자격 요건을 그대로 둬 '생색'만 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최근 발표한 '하반기 경제 정책 방향'에서 올해 4분기 중 디딤돌 대출 한도를 2억 원에서 2억5000만 원으로 높여주겠다고 했다. 디딤돌 대출은 무주택 가구가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 금융 상품이다.
부부 연(年)소득 6000만 원 이하, 자산 4분위(하위 80%) 이하 무주택 가구에 담보인정비율(LTVㆍ담보가치 대비 대출 한도 비율) 70%를 적용해 주택 자금을 대출해준다. 집값의 70%까지 빌릴 수 있다는 뜻이다.
대부분 지역이 부동산 규제지역으로 묶여 있는 서울ㆍ수도권에선 디딤돌 대출을 받을 수만 있으면 일반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보다 집값 마련 부담이 훨씬 덜하다. 금융당국은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에서 주택담보대출 LTV가 각각 40%, 50%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금리 역시 일반 주택담보대출보다 낮아 상환 부담도 덜하다.
문제는 디딤돌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집을 찾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는 점이다. 집값 상승세가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서울ㆍ수도권에선 특히 그렇다. 수도권에서 디딤돌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집은 가격이 5억 원 이하로 한정돼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수도권 아파트 중간값(가격을 일렬로 세웠을 때 중간에 해당하는 값)은 5억6789만 원이다. 디딤돌 대출을 신청할 수도 없는 집이 더 많다는 뜻이다.
아파트 중간값이 8억8396만 원에 이르는 서울에선 디딤돌 대출을 받기가 더 어렵다. 부동산 정보회사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에서 5억 원 이하 아파트는 전체 아파트 중 7.6%에 불과하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일각에선 정부가 하반기 디딤돌 대출을 신청할 수 있는 주택 가격 기준을 높일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정부 논의 과정에서 대출 문턱을 낮추면 주택 구매 수요를 자극, 집값 상승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무산됐다고 알려졌다.
이달부터 시행되는 무주택자 우대 LTV 상향 조치는 이 보다는 실효성 있지만 주택시장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정부는 이달 1일부터 무주택자가 주택 구입을 위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적용받는 LTV 우대 폭 상한을 10%포인트에서 20%포인트로 높였다. 우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주택 기준도 투기과열지구에선 6억 원 이하에서 9억 원 이하로, 조정대상지역에선 5억 원 이하에서 8억 원 이하로 확대했다.
정부가 무주택자 우대 LTV를 적용받을 수 있는 주택 범위를 확대하긴 했지만 그간 집값 상승세를 생각하면 '찔끔 확대'에 그친다는 게 수요자들 불만이다. 서울의 경우 무주택자 우대 LTV를 적용받을 수 있는 9억 원 이하 주택 비중이 42% 정도다.
여경희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LTV 우대 범위 확대로 무주택자가 집을 구매하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도 "서울은 집값이 워낙 비싸다 보니 조건에 맞는 집을 찾아 매수할 기회가 희소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대출 규제 기준을 현실에 맞게 낮춰 실수요자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다주택자나 일정 가격 이상 고가 주택 보유자에 대해선 강한 대출 규제를 유지하더라도 무주택자나 1주택자에 대해선 전면적으로 대출 규제를 완화해 내 집 마련을 도울 필요가 있다"며 "이들에 대해선 적어도 중위가격(중간값)을 기준으로 대출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