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리는 공정지도] “월급 모아 언제 집 사…믿을 건 주식ㆍ코인뿐"

입력 2021-07-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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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1-06-30 19:00)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신혼 특공 등 '금수저'가 혜택 독차지

4대 가상화폐 신규계좌 63.5% '2030'
예ㆍ적금으론 자산 격차 좁히기 힘들어
가상화폐 투자로 건물주 됐지만 '불안'

올해 초 코스피지수가 종가 기준 3000을 돌파했다. 2030세대가 이 흐름에 올라탔다. 집값 급등으로 인해 근로소득만으로는 자산 소득 증가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믿는 ‘자산 불공정 세대’가 베팅에 나선 것이다.

이투데이가 최근 만난 2030세대는 “흙수저들이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주식과 가상화폐 투자”라고 입을 모았다. 이태민(28·이하 가명) 씨는 “내 집 마련을 하고 싶은데 일반적인 방법(근로를 통한 소득)으로 그 금액을 모을 수가 없어서 투자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영지(27) 씨 역시 “월급만으로는 미래의 답이 보이지 않아 최근 주식 계좌를 개설했다”고 얘기했다.

2030세대는 주식, 가상화폐 투자를 공정한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배경과 상관없이 투자 조건과 리스크가 같고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접근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르는 상황에서 투자 외에 자산 격차를 따라잡을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강하다. 현재 소득만으로는 미래가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MZ세대가 투자에 관심을 보이는 현상을 분석했다. 그 결과 ‘그나마 가장 공정한 게임이라서’ ‘남이 하니 나도 해야 하는 것’ ‘부동산 구매를 위한 디딤돌’ 등이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투데이가 만난 이들 세대의 목소리는 이와 같은 분석 결과를 뒷받침했다.

결혼을 앞둔 윤은지(28) 씨는 “엄마 아빠 세대 때도 어려웠지만 적어도 그때는 열심히 일하면 집을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은 있었다”며 “최근 집을 알아보고 있는데 대출 기간도 짧고 주택담보대출비율(LTV)도 낮아져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혜성(24) 씨는 “내 집 마련에 대한 생각은 언제나 갖고 있지만 기성세대 때와 달리 일자리도 줄고 소득에 비해 집값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며 “최근 주식 투자를 시작했고 공고 뜰 때마다 청약을 넣고 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2030세대의 주장은 과연 과도한 기우일까.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이 발표한 주택시장 동향을 분석해 보니, 중위 소득 가구가 서울에서 중간 가격의 집을 사려면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16.8년을 모아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대비 집값 비율(PIR)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8년 이후 최고치다. 서울에서 내 집을 마련하기는 결코 녹록지 않은 것이다. 하위 20%의 처지는 더욱 암담했다. 높은 가격대의 집을 사는 데는 101.5년이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청약을 통해 집을 마련하는 길도 좁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부동산원으로부터 제출받은 래미안원베일리 일반공급 청약 신청자·당첨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일반분양 224가구 공급 물량에 20대와 30대 총 1만7323명이 신청해 30대에서만 두 명이 당첨됐다.

정부는 청년과 1인 가구를 위한 주거복지지원으로 신혼부부특별공급이나 생애최초 특별공급을 해주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 부담 능력이 부족한 청년층에는 ‘그림의 떡’이다. 부모의 재력이 있는 ‘금수저’ 계층이 혜택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은 신혼부부 특공 당첨 확률이 대부분 수백 대 1이고 서울을 벗어나도 수십 대 1 경쟁률을 보인다. 공급물량도 적어 ‘희망 고문’이 되고 있다. 신혼부부·생애최초 특공을 늘리면 그만큼 일반물량이 줄어들어 40·50세대를 중심으로 ‘역차별 논란’이 제기된다. 자칫 세대 갈등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든 청약경쟁과 가파르게 오르는 집값을 예ㆍ적금 금리가 따라가지 못하면서 저축은 자산 불리기의 답이 아닌 시대가 됐다. 은행연합회 공시자료를 보면 18개 은행, 46개의 예금 상품(12개월)의 5월 기준 평균 기본 금리는 0.81%다. 금리가 가장 높은 상품은 1.2%, 가장 낮은 상품은 0.3%였다. 적금도 비슷하다. 18개 은행, 42개의 적금 상품(12개월)의 5월 기준 평균 기본 금리는 1.16%다. 금리가 가장 높은 상품은 3.3%, 가장 낮은 상품은 0.6%였다.

은행 예ㆍ적금 금리가 10%를 넘던 과거와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은행에 돈을 저금해도 자산을 불릴 수 없다. 이러니, 2030세대가 예ㆍ적금이 아닌 주식이나 가상화폐 투자에 빠져드는 것이다.

거래가격이 하루에 최고 30%만 오를 수 있는 주식과 달리 가상화폐는 가격 상승에 제한이 없다. 적은 돈을 넣고도 운이 좋으면 수백 퍼센트의 수익을 올릴 수 있어 수많은 청년들이 가상화폐에 몰입하고 있다. 김정우(29) 씨는 “가상화폐는 변동 폭이 극단적이라 리스크가 있는 것을 알지만 그만큼 수익이 크기 때문에 주식에서 돈을 빼 코인에 넣었다”고 말했다. 윤수영(32) 씨 역시 “자본이 부족한 청년들에게 주식은 동전 벌기나 마찬가지”라며 “코인은 소액으로도 큰돈을 만들 기회라서 탈(脫)주식했다”고 얘기했다.

코인 투자로 큰돈을 번 청년도 있다. 은행원 강민호(30) 씨는 2017년부터 7000만 원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해 이더리움에 투자해 3억 원의 수익을 냈다. 강 씨는 청주에 땅을 사 건물을 올렸다. 건물주가 됐지만 그는 직장에 계속 다니고 있다. 가상화폐 투자로 계층 사다리는 올랐지만 코인 시장이 여전히 불안해서다. 강 씨는 한때 9000만 원 넘게 잃기도 했다. 그는 지인들이 가상화폐로 돈을 많이 벌고 회사를 떠나는 것을 보면서 일에 대한 회의감이 생기기도 했다. 그에게 가상화폐는 자산 불공정을 해소한 고마운 사다리이면서도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위험한 폭탄이다. 많은 청년들이 가상화폐로 낭패를 봤다.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실 자료를 보면 국내 4대 가상화폐 거래소(빗썸·업비트·코빗·코인원)의 올해 1분기 신규 가입자 10명 중 6명은 2030세대였다. 전체 신규 가입자(249만5289명) 중 △20대 81만6039명(32.7%) △30대 76만8775명(30.8%) △40대 47만5649명(19.1%) △50대 21만9665명(8.8%) 등이다.

가상화폐는 변동성이 커 위험도 크다. 대장주로 꼽히는 비트코인은 4월 14일 8000만 원 선을 넘겼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비트코인 채굴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테슬라 결제 수단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자 비트코인의 하락세가 시작됐다. 6월 30일 기준 비트코인은 최고점의 반 토막인 4100만 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런 변동성이 큰 투자시장에 2030세대가 몰입하는 게 2021년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안전한 주거사다리가 마련되지 않는 한, 이들을 이곳에서 벗어나게 할 방법은 딱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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