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선진국으로 꼽히는 국가는 그리 많지 않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미국과 캐나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정도(도시국가인 홍콩 싱가포르는 제외), 유럽에서는 독일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아일랜드 오스트리아 등과 북유럽 국가들일 것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선진국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한 것 같고, 이탈리아는 경계선에 있는 듯하다. 북부 이탈리아는 선진국 수준이지만 남부 이탈리아는 많이 낙후되어 있다. 유럽에서도 룩셈부르크나 모나코 같은 나라는 선진국 이상으로 잘 살지만 도시국가라 제외하였다.
이들 선진국을 한 표로 모아서 보면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는 오른쪽 끝에는 미국이 있을 것이고, 복지와 분배를 중시하는 북유럽 국가들은 왼쪽 끝에 있을 것이다.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는 중간쯤에 자리 잡을 것 같다. 미국보다 더 경쟁을 강조하면 분배가 나빠져 남미 국가들처럼 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북유럽 국가보다 더 분배에 치중하다 보면 경쟁력이 떨어져 과거 사회주의 국가처럼 국제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다. 한국은 어디에 있고, 어떻게 해야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한국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질문이다.
한국의 분배구조는 신자유주의 종주국이라는 미국보다도 나쁜 면이 있다. 상위 0.1%, 상위 1%의 소득집중도는 미국이 더 나쁘지만, 상위 10%의 소득집중도는 한국이 미국보다 더 나쁘다. 여기에다 최근에 폭등한 집값과 집세는 분배구조를 더 악화시키고 있을 것이다. 한국 경제의 경쟁력과 효율성도 북유럽 국가보다 높다고 보기 어렵다. 일부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높을 수 있다. 그러나 국가 전체의 경쟁력은 세계경제포럼의 국가경쟁력보고서를 보면 정책의 신뢰성과 투명성 부족 등으로 북유럽 국가보다 낮다. 지금 한국은 미국과 북유럽 사이를 벗어나, 대부분의 선진국이 가는 길에서 멀어지고 있는 듯하다.
한국은 분배와 복지가 미국보다 좋아야 하고, 경쟁력과 효율성이 북유럽 국가보다 높아야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즉, 한국경제의 모델은 미국이나 북유럽 국가가 아닌 독일이나 프랑스가 되어야 한다. 특히 독일은 경제력과 함께 복지와 환경까지 갖춘 우리가 본받을 만한 점이 많은 나라이다. 여기에다 한국과 유사한 면도 있다. 지금은 통일되었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50여 년간 분단국가였다는 점, 인구는 8200만명으로 통일한국과 비슷하다는 점, 제조업의 비중이 높은 산업구조라는 점, 국민이 근면하고 경제적 가치를 중시한다는 점 등이 한국과 비슷하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경쟁력, 노사관계, 실물과 금융의 균형 발전, 교육제도, 보상체계와 집값 안정 등에서는 크게 차이가 있다.
어떻게 해야 한국이 독일과 비슷한 선진국의 길을 갈 수 있을까? 독일이 갖고 있는 덕목 중에서 우리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어야 한다. 겉으로 드러난 수치상의 차이보다는 밑바탕에 깔려 있는 근본 원인을 찾아 채워야 한다. 독일 사회의 높은 신뢰성, 대학을 나오지 않은 기술 인력도 잘 사는 보상체계, 물가와 집값 집세의 확고한 안정, 잘 디자인된 복지체계 등이 독일 경제를 지속 성장하게 하는 핵심 요인일 듯하다. 독일도 통일 이후 1990년대 초반에는 경제가 흔들려 한때 ‘유럽의 병자’라고 불리기도 했다. 독일은 1990년대 후반부터 혹독한 자기반성과 일관된 구조개혁을 통해 2000년대 중반부터는 성장 일자리 경쟁력 등이 회복되고, 일본과는 다른 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이 미국과 같은 패권 국가는 될 수 없겠지만, 우리의 바른 선택과 노력이 있다면 독일이나 프랑스와 비슷한 경제력과 복지를 갖추고 자유롭게 사는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왕조시대가 아닌, 많은 것을 우리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행운이기도 하지만 현재 우리의 삶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하는 부담도 있다. 남의 탓보다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개혁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