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국내 사적연금 규모는 621조 원(퇴직연금 256조 원, 연금저축 152조 원, 연금보험 213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834조 원 규모의 국민연금을 합치면 공·사적연금 규모는 총 1454조 원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세계 어느 나라보다 초고령화 사회로 가는 속도가 빠르다. 이 경우 연금 시장의 양적 팽창이 본격화된다는 것이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연금이 향후 개인은퇴자산 및 소득원의 중심이 될 것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금자산이 현재 잘 관리되고 있지 않다는 것 역시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연금자산이 적립되는 방법을 보면 연봉이 5000만 원인 회사원을 예로 들 경우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에 각각 450만 원(급여의 9%), 417만 원(한 달치 급여)씩 적립되고, 본인이 세액공제 혜택을 위해 연금저축에 추가로 400만 원을 넣을 수 있다. 이 경우 매년 연금자산으로 쌓이는 급여액은 1267만 원으로 석 달치 월급 수준이 된다. 연소득에서 적지 않은 금액이 연금에 옮겨지는 셈이다.
박영호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이사는 “사적연금의 문제는 운용이 방치되고 있고, 이로 인해 수익률이 낮다는 것”이라며 “연금저축은 대개 연말정산을 먼저 떠올릴 만큼 세액공제 수단이라는 인식으로 선택하게 되며, 자산운용의 중요성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으며 퇴직연금의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해 전반적으로 수익률 부진에 노출돼 있다”고 진단했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퇴직연금 중 확정급여(DC)형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의 2020년 연평균 수익률은 3.5%, 3.8%씩을 기록해 전년 대비 의미 있게 개선되지 못했다. 이는 실적배당상품 수익률(DC 13.2%, IRP 12.0%)이 지난 해 대폭 향상됐음에도, 저금리 영향으로 1%대 수익률에 머문 원리금보장상품을 80%나 편입했기 때문이다.
박 이사는 “이는 연금에 적합하지만 면밀한 이해가 필요한 장기투자상품을 중점 편입하는 대신 손쉬운 단순저축 상품을 선택한 것이 수익률 저조로 귀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때문에 재테크 분야 전문가들은 다양한 방안을 고민해 볼 것을 권유하고 있다. 우선 ETF에 관심을 갖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상장지수펀드(ETF)는 일반 펀드처럼 지수를 추종하거나 주식, 채권, 원자재, 리츠 등 여러 자산군에 분산 투자하는 등 변동성과 위험을 관리하는 기능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다.
여기에 주식시장에 상장돼 거래되므로 일반적인 펀드에 비해 수수료가 낮다. 운용 및 자산배분 변경에 있어 높은 편의성을 제공한다는 장점도 지닌다.
박영호 이사는 “향후 ETF 투자는 '고령화' '기술혁신' '그린(환경안전)'을 중심으로 한 메가 트렌드에 주된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다”면서 “고령화, 기술혁신, 그린과 같은 메가 트렌드는 저물가 및 저금리 추세를 고착시키면서도 차별적이고 강력한 장기성장 흐름을 만드는 양면성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퇴직연금 등 연금 계좌에서는 레버리지, 인버스 등 과도한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일부 ETF를 제외한 다양한 주식형 ETF를 일정 비중 이하로 투자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박 이사는 투자성과의 개인차를 줄이는 데 디폴트옵션(default option) 도입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자산운용 방법을 선정하지 않으면 사전 지정한 적격상품으로 자동 운용되게 하는 제도다.
그는 “적격 디폴트상품으로 퇴직연금에 적합한 투자상품을 엄선해 등록하는데, 그 대상으로 타깃데이트펀드(TDF)가 대표적”이라며 “TDF는 생애주기에 맞춰 자산 배분을 설계함은 물론 자산 배분의 자동 변경, 재조정(rebalancing)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2020년 말 사적연금에서 편입한 TDF 순자산은 최근 고성장세와 함께 4조7000억 원(금융투자협회 집계)에 달하고 있지만 아직 사적연금 전체의 0.8%에 불과하다. 미국이 퇴직연금 적격 디폴트옵션인 QDIA에서만 87% 비중인 1조 달러를 TDF로 운용 중(2019년)인 것과 비교하면 그 격차가 크다.
박 이사는 “TDF는 글로벌 분산투자로 변동성을 낮추면서 자동 운용이 가능하므로 연금에서의 장기투자상품으로 유효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