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미니츠'에서 살인수로 복역 중인 천재 피아니스트 제니 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김환희 배우를 만났다. 그에게 여태껏 보지도, 듣지도 못한 4분간의 피아노 연주를 할 때 심경을 물었다. 그는 "의자에 앉는 것부터 감회가 새롭다"고 운을 뗐다.
"굉장히 높은 하늘 위에 올라가 있는 것 같아요. '나 이제 날 테야'라는 마음으로 날개를 펴려고 하는 거예요. 그 호흡으로 '땅!' 첫 연주를 하는 순간 날갯짓이 시작되는 거죠."
한 공연당 4분간의 연주를 위해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피아노와 씨름했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김환희는 "누가 시켜서 피아노를 쳤던 게 아니다"면서 "공연 직전까지 악몽을 꾸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책임지기 위해 자기와 싸움을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니는 우리가 익숙한 피아노 연주를 하지 않는다. 부드럽게 멜로디를 치다가 어느새 피아노를 강하게 내려친다. 굉음이 거둬지기도 전에 그랜드 피아노의 현을 마구 뜯는다. 그러다 가야금을 연주하듯 현을 어루만진다.
이 모든 게 제니의 심경 변화 과정과도 같다. 제니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녀 어렸을 때부터 각종 경연대회에 입상했지만, 양아버지에게 학대를 받다 가출해 방황하다 교도소에 들어간다. 이후 크뤼거를 만나 따뜻한 가르침을 받고 세상에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 제니의 이야기를 말이 아닌 피아노로 보여주는 셈이다.
"현을 두들기면서 '내 얘길 들어봐'라고 말하는 거예요. 발과 손으로 탭 할 때도 조금씩 날갯짓을 하는 거죠. 모든 것들이 제 심장에서 나오는 거 같아요."
김환희는 화장기 하나 없는 모습에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등장한다. 그리고 100분간 무대 위에서 거의 사라지지 않는다. 관객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건 피아노 밑에 웅크려있을 때 뿐이다.
"제 감정과 상태를 계속 갖고 가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어요. 매번 공연할 때마다 감정도 다르고 제 상태도 달라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온 스테이지' 하는 것 자체가 '포미니츠'의 묘미예요."
이 작품은 2006년 개봉한 크리스 크라우스 감독의 영화를 바탕으로 한다. 배우 양준모가 기획했고, 직접 예술감독을 맡으며 정동극장 무대에 올렸다. 배역들의 기분, 몸 상태까지 직접 양 감독이 점검하고 있다.
"'브로드웨이 42번가' 공연할 때 준모 오빠를 처음 만났어요. 오디션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이거 되게 힘든 작품이야. 그러니 끝나고 나선 너의 지금 모습을 절대 잊지 말고 빠져나와야 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지금도 늘 '너 괜찮니?'라고 물어봐 줘요. 건강에 대한 안녕일 수도 있지만, 제니로서 힘든 건 없는지 계속 확인하는 거죠."
제니의 재능을 발견해준 사람은 크뤼거(김선영, 김선경 분)다. 김환희에게도 크뤼거 그리고 피아노 같은 존재가 있을까.
"제니에게 피아노가 있다면, 제겐 목소리가 그래요. 제게 주어진 달란트를 어떻게 쓰느냐는 제 선택이고 제 몫이에요. 하지만 노래를 하지 못하게 된다면 저는 엄청난 우울함을 얻게 될 것 같아요. 제게 크뤼거는 '칭찬'이에요. 단순히 잘한다는 말보다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춤추고 싶어져요."
김환희는 늘 변화를 꾀한다. 2015년 뮤지컬 '판타지아'로 데뷔한 이후 '빅 피쉬', '킹키부츠', '브로드웨이 42번가', '베르나르다 알바'까지 다수의 작품에서 이미지 변신을 보여줬다.
"물론 작품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제가 느낄 수 있는 게 제일 중요해요. 다양한 시도도 계속 하려 해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만큼 제 이미지의 변화를 주고 싶어요. 그간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자주 보여드렸는데, '포미니츠'로 완전히 변신할 수 있게 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