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선택적 무죄추정의 원칙

입력 2021-05-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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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효진 사회경제부장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모든 피고인(피의자)은 무죄로 본다.’

우리나라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명시된 ‘무죄추정의 원칙’은 프랑스 혁명기인 1789년 8월 선포된 ‘프랑스 인권 선언’에서 유래했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자국의 법률에 적용하는 이 원칙은 ‘인권 보호’와 맞닿아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은 본래의 취지보다 정치적으로 이용되기 일쑤다. 피아 구분을 한 뒤 확실한 '우리편'에는 철저한 무죄추정의 원칙을 주장한다. 유죄가 확정된 것도 아닌데 왜 범죄자 취급을 하느냐며 상대방을 공격한다.

맞는 말이다. 준엄한 법의 심판대에서 유죄가 확정된 것도 아닌데 여론 재판을 통해 낙인을 찍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일이다.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엔 대전제가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만인에게 공평하게 적용돼야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선택적 무죄추정은 형사사법시스템의 대표적인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로 국민 분열을 조장한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공정하게 지켜지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부끄러운 현실이다. 선택적 무죄추정의 섬뜩한 칼날은 전직 대통령들도 피해갈 수 없었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수사 외압 혐의로 기소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직무배제를 둘러싼 작금의 사태를 봐도 알 수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 지검장이 재판에 넘겨지자 “기소와 징계는 별개”라거나 “(검찰의 기소는) 억지춘향”이라고 비판했다.

박 장관의 발언 배경에는 선택적 무죄추정의 원칙이 작용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검찰 내에서 친정부 인사로 분류되는, 같은 편인 이 지검장을 지키기로 마음을 굳힌 듯하다.

박 장관은 수사 외압 의혹에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이름이 줄줄이 등장한 이 지검장의 공소장 요약본이 유출되자 즉각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이 지검장에 대한 직무배제를 고민해 검찰의 공정성과 정당성, 신뢰성을 회복하는 방안을 찾는 것보다 공소장 유출자 색출이 급한 모양이다.

지검장이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는 초유의 일이 곧 벌어진다. 수사를 받는 사건당사자들은 피고인 지검장이 결재한 사법처리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 지검장을 직무에서 배제시키는 게 상식적인데 박 장관은 아니라고 한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직무에서 배제됐다 복귀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 ‘검언유착 의혹 사건’으로 좌천 인사 조처된 한동훈 검사장(법무연수원 연구위원) 때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윤 전 총장과 한 검사장은 혐의만으로 직무에서 제외됐다. 이 지검장은 기소됐으나 자리를 지켰다. 비슷한 상황이라면 최소한 결과라도 비슷하게 나와야 하지만 '이현령비현령'이다.

박 장관이 이 지검장을 직무에서 배제하려면 대검찰청(검찰총장)의 요청이 있거나 감찰을 받는 등의 여러 절차가 필요해 시간이 좀 걸릴 수 있다.

이 지검장이 스스로 물러나는 방법도 있지만 그가 재판에서 결백을 밝히겠다고 한 만큼 가능성은 매우 낮다.

김오수 검찰총장 내정자가 임명된 후 이어질 인사가 주목된다. 박 장관은 올 하반기 대대적인 검찰 인사를 예고한 바 있다.

‘촛불 정신’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조 전 장관 일가 의혹 등 공정 이슈의 역풍을 맞으며 위기를 자초했다. 4·7 재보궐선거에서 야당이 압승하면서 국민 심판론이 대두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레임덕이 가속할지 모르는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박 장관이 존재감을 드러내려면 지금이 적기다. ‘선택적 정의’는 국민들에 더 큰 실망감만 안겨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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