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미세공정 패권경쟁에 이어 반도체 첨단 패키징(후공정) 기술 경쟁에 불이 붙었다. 패키징 기술이 고급 반도체 개발과 고객 유치를 위해 필요한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반도체 기업의 움직임도 바쁘다. 칩을 쌓고 배치하는 자체 첨단 기술 확보에 열을 올리는 한편, 과감한 시설투자도 잇따르고 있다.
6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회사 DS사업부는 최근 로직 칩과 4개의 HBM(High Bandwidth Memory) 칩을 하나의 패키지로 구현한 독자 구조의 2.5D 패키지 기술 ‘아이큐브4’(I-Cube4)를 개발 완료했다.
2.5D 패키징은 중앙처리장치(CPU)ㆍ그래픽처리장치(GPU) 등 로직 반도체와 메모리를 따로 배치하는 일반적인 반도체 후공정과 달리, 이들을 모두 한곳에 몰아넣는 기술이다. 패키지 면적을 줄이면서도 전송 속도를 높여 고성능·저전력 반도체 제조를 가능하게 한다.
이 부문에서 삼성전자의 이전 기술은 2018년 개발한 'I-Cube2'다. 메모리와 2개의 HBM 칩이 집적됐다는 뜻으로, 3년 만에 한 곳에 몰아넣을 수 있는 칩 개수가 2배로 늘어난 셈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HBM을 6개, 8개 탑재하는 신기술도 개발 중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몇 년간 첨단 패키징 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기술 개발에 열중해왔다. 지난해엔 로직 반도체를 비롯한 여러 개의 칩을 수직으로 쌓는 3D 패키지 기술 ‘엑스큐브’(X-CUBE)를 상용화했다.
기관투자자 대상 포럼 등 업계에 밝힌 기술 개발 로드맵에선 2.5D와 3D 적층 기술을 결합한 '엑스아이큐브' 개발 계획도 드러난 바 있다.
경쟁사들도 한시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최근 파운드리 사업에 다시 뛰어든 인텔은 3일(현지 시간) 35억 달러(약 4조 원)를 투자해 미국 뉴멕시코주 리오랜초 공장에 후공정 시설을 추가로 짓는다고 밝혔다. 뒤처진 후공정 기술 확보를 위한 ‘초강수’다.
현재 인텔은 삼성전자의 '아이큐브'에 대응되는 ‘EMIB’, 엑스큐브에 대응되는 포베로스(FOVEROS) 등의 후공정 기술을 갖고 있다. 증설을 통해 현재 생산시설에 이러한 기술을 접목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파운드리 1위 업체인 대만 TSMC 역시 일본 이바라키 현 쓰쿠바시에 2100억 원을 들여 반도체 후공정 기술 연구소를 설립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 반도체 후공정은 기술 난도가 높지 않고 과정이 단순해 외주를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들어 이 기술의 중요성이 두드러진 건, 인공지능(AI)·빅데이터 산업 발전에 따라 고급 반도체 시장이 이전과는 다른 속도로 급성장 중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기술력의 척도’로 불렸던 초미세공정 기술은 10㎚(나노미터=1억분의 1m) 아래로 진입하며 개발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 상태다. 초미세공정만으론 원하는 만큼의 반도체 성능을 구현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후공정 기술을 강화하면 같은 선폭에서도 더 뛰어난 성능의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
고성능·저전력 반도체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이 같은 기조는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경민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반도체) 패키징이 업계 추세를 이끌어나갈 분야로 자리를 잡고 있고, 시장도 그만큼 커졌다"라며 "초소형ㆍ저전력 반도체를 구현하기 위한 솔루션으로서 패키징 기술이 할 수 있는 일이 상당히 많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