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 산업계에 펼쳐진 ‘실적 잔치’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비수기 시점에도 고수익 사업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친 결과다.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었지만, 기업들의 표정은 썩 밝지만은 않다. 2분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움직임을 비롯한 인플레이션·원자재가 상승·주요 부품 수급 불균형 등 경영에 차질을 줄 수 있는 각종 요소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서다.
◇1분기 실적은 일단 '봄'…수백 퍼센트 고공 행진·흑자전환까지=5일 산업계에 따르면 전자·반도체, 화학, 정유, 철강, 자동차 분야 주요 기업들의 1분기 영업이익은 작년과 비교해 적게는 수십 퍼센트에서 많게는 수백 퍼센트 증가했다. 흑자 전환을 이뤘거나,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한 기업도 적지 않았다.
가장 큰 폭의 실적 개선을 이룬 기업은 작년과 비교해 영업이익이 580% 넘게 오른 LG화학(1조4081억 원)이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1조 원을 넘겼다. 금호석유화학(6125억 원), LG전자(1조5116억 원) 등의 기업은 분기 실적 새 역사를 새로 썼다.
지연됐던 코로나19 수요가 회복되며 현대차(1조6566억 원)와 기아(1조764억 원), 포스코(1조5524억 원), 삼성SDI(1332억 원) 등은 전년 대비 2배 수준의 수익을 올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표 반도체 기업도 50% 안팎의 실적 상승률을 보여줬고, 에쓰오일(6292억 원)과 현대제철(3039억 원) 등 적자를 이어오던 기업도 흑자 신호탄을 쐈다.
◇자동차·스마트폰·가전·배터리…반도체 부족의 '늪'=1분기 호실적을 기록했지만, 국내 주요 기업의 시선은 온통 2분기 이후로 가 있다. 녹록지 않은 경영 환경이 예상되는 탓이다. 이러한 시각은 각 기업이 진행한 콘퍼런스콜의 경영진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가장 대표적인 위험 요소는 반년 가까이 지속하고 있는 반도체 수급 불균형 이슈다. 자동차 산업을 비롯해 전자기기, 배터리 산업까지 연쇄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건 자동차 산업이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1분기까지만 해도 글로벌 공급망 관리를 통해 감산은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달 반도체 수급 ‘보릿고개’ 시기가 닥치면서 일부 공장에 대해선 휴업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달 19일 공식 출시한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 생산도 정체됐다.
지난달 말 콘퍼런스콜에서도 회사는 “자동차 수요의 빠른 회복에 따라 반도체가 조기에 소진되고 있어 수급 어려움이 예상했던 것보다 장기화하는 양상”이라며 관련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수급난이 지속한다면 하반기 출시가 예정된 제네시스 브랜드의 전용 전기차 JW(프로젝트명), 기아의 EV6 양산도 영향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
삼성·LG전자도 스마트폰을 비롯해 TV, 가전 등 세트사업 부품 수급에 어려움을 빚고 있다고 언급했다. 스마트폰뿐 아니라 노트북, 세탁기, 냉장고 등 반도체 부족에 따른 여파가 이미 광범위하게 퍼졌다는 뜻이다.
삼성전자는 1분기 ‘실적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스마트폰 실적을 놓고는 일찍이 둔화를 점쳤다. LG전자는 가전과 TV 사업에서 수익성 우려가 있다고 언급했다. 전장 부품 사업에 대해선 “2분기부터 일부 거래처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직 직접적 영향권엔 들지 않은 배터리 기업들도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삼성SDI 관계자는 콘퍼런스콜에서“(스마트폰 부품 부족 문제가) 아직 파우치 배터리 사업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라면서도 “다만 반도체 부족 상황이 길어지면 생산계획 변동이 발생할 수 있다”라고 여지를 남겼다.
◇인플레·긴축발작 우려…'그레이스완'이 온다=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재화 시장 과열도 기업 압박 수위를 더해가고 있다. 3월 미국의 소비자 물가는 2.6% 상승하며 2018년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매우 큰 인플레이션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달 국내 소비자물가지수도 한해 전보다 2.3% 오르면서 2017년 8월 이후 3년 8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을 기록했다. 물가 상승 폭 2%는 통상 인플레이션 여부를 가리는 기준선으로 쓰인다.
특히나 원가가 수익률로 직결하는 업종인 철강과 조선업체 등은 원자재 가격 추이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포스코는 콘퍼런스콜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세계 경제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라며 "철광석 등 원료 가격 변동성이 과거보다 확대돼 실적에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한국조선해양은 "지난해 4분기에 비해 후판 가격이 10% 이상 올랐다. 하반기에도 추가로 인상될 것"이라며 "이런 부분을 고려해 선가협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밖에 현대차도 환율 변동성 확대,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대외 요인이 경영 활동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인플레 논의가 불거지며 긴축논의 시점이 생각보다 당겨질 수 있다는 점도 기업으로선 위험 요인이다. 자금흐름과 외환시장의 움직임이 급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달 말 발간한 보고서에서 국내 수출 경기를 위협할 수 있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금융시장의 긴축발작'을 지목하며, "기업으로서 신흥시장 긴축발작 가능성에 대응해 외환 포트폴리오의 점검 및 주요 원자재 가격 변동성 대응 시스템 확충이 요구된다"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