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체크카드를 넘겨준 것을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 씨의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제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4일 밝혔다.
A 씨는 2019년 6월 체크카드를 보내주면 대출을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체크카드를 넘겼다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2000만 원 이상 대출이 가능하다”면서 “이자 상환은 계좌에 대출 이자를 입금해 놓으면 체크카드를 이용해 출금할테니 이자 상환에 필요한 체크카드를 보내달라”고 A 씨를 속였다.
전자금융거래법은 누구든지 접근매체를 사용, 관리함에 있어서 대가를 수수·요구 또는 약속하면서 대여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1심은 A 씨가 향후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무형의 기대이익을 받을 것을 약속하고 접근매체를 대여해 전자금융거래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이와 별도로 A 씨는 교제하던 B 씨에게 은행 대출을 받게 해달라며 보증계약서에 서명하도록 하고 9000만 원을 대출받은 후 갚지 않은 혐의(사기)로 기소됐다. A 씨는 이미 사채 등 2억 원의 채무를 부담하는 상황이어서 돈을 갚을 능력이 없었다. 사기 사건 1심은 A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2심은 두 사건을 병합해 심리한 뒤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에 대해 “설령 피고인이 접근매체가 보이스피싱 등 추가적인 범행에 사용되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더라도 전자금융거래법위반죄 성립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고인은 대출금과 이자를 지급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성명불상자의 기망으로 카드를 교부했다”며 “대출의 대가로 접근매체를 대여했다거나 카드를 교부할 당시 그러한 인식을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사기 부분에 대해서는 원심의 유죄 판단이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