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위해 꼭 산소통을 가져가겠다고 약속했어요."
산소통을 가져가려는 현지 경찰을 향해 열일곱 인도 소년 안쉬 고얄은 이렇게 외쳤다. 안쉬는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아그라시의 한 사설 병원에서 현지 경찰에게 어머니 치료를 위한 산소통을 뺏겼다.
현지 매체 타임스 오브 인디아는 경찰이 VIP 환자를 위해 안쉬의 산소통을 가져갔다며 그가 계급에 밀려 산소통을 빼앗기는 바람에 어머니를 잃었다고 보도했다. 안쉬의 절규는 트위터의 영상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논란이 커지자 현지 경찰은 "경찰이 가져간 건 빈 산소통이었다"고 해명했지만, 비판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결국 라지브 크리슈나 치안정감까지 나서 “산소통 강탈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 이후 죄가 있다면 해당 경찰들을 엄중한 조치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최근 인도에서는 일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40만 명을 넘어서며 확산세가 거세다. 이에 따라 산소 부족 사태가 심화되며 산소 쟁탈전이 벌어지는 등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산소를 두고 암시장 거래도 만연하다. 코로나19 사태가 심화 전 6000루피(약 9만 원)정도였던 산소통은 현재 암시장에서 5만 루피(약 75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영국 BBC는 인도 병원들이 현재 극심한 산소 부족 사태로 환자들의 입원을 거부하고 있다고 2일 보도했다. 의료진들은 환자 치료에 오롯이 전념하기보다 산소를 구하기 바쁜 상황이다.
인도 델리에서 슈리 람 싱 병원(Shri Ram Singh hospital)을 운영하는 고탐 싱 박사는 "50개의 코로나 환자용 침상와 중환자용 공간 16개가 있지만, 산소 공급이 보장되지 않아 입원을 거부해야 했다"고 호소했다. 아울러 그는 "나는 (의료진으로서) 산소 부족 현상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환자 치료에 전념해야 한다"고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의료용 산소는 코로나19를 비롯해 호흡기 질환 환자를 치료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코로나19 환자 가운데 폐렴에 걸린 위·중증 환자는 인공호흡기나 에크모(ECMO·체외막 산소화 장치) 치료가 필수적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세계 코로나19 환자 다섯 명 중 한 명은 혈액 내의 산소 포화도가 낮아 의료용 산소가 필요하다. 2021년 2월 세계보건기구(WHO)는 50만 명의 사람들이 하루에 120만 개의 산소통을 필요로 한다고 분석했다.
인도의 산소 부족 원인으로는 폭발적인 환자 증가세를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정부의 '안일한 대비'가 꼽힌다. 인도 국회 보건상임위원회는 지난해 11월 부족한 산소 공급과 정부 병상에 경고했지만, 정부는 안일하게 대처했다.
인도 공공정책 및 보건시스템 전문가인 찬드라칸트 라하리야 박사는 BBC에 "잠재적인 위기에 대해 꾸준히 경고했지만, 정부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인도의 부족한 유통·교통망 정비 계획이 산소 부족 사태를 유발했다"고 분석했다.
초유의 산소 부족과 의료 시스템 위기 상황으로 인해 세계 각국에서 인도를 향한 도움의 손길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은 물론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까지 산소 발생기, 마스크, 백신을 포함한 비상 물자를 보내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현지 교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외교 행낭으로 산소 발생기를 보냈다. 아울러 정부는 400만달러 규모의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 역시 인도를 향한 지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쑨웨이동 인도 주재 중국 대사는 1일 중국 환구시보를 통해 인도에 산소발생기 4만 대를 추가로 공급한다고 밝혔다. 최근 몇 년 간 중국은 인도와 '쿼드'(QUAD) 및 국경 갈등 문제로 껄끄러운 관계를 이어왔지만, 미국이 인도 태평양 지역 확대와 중국 견제를 위해 백신을 지원하면서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