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올해 전국 평균 19% 넘게 올랐다. 지난달 공시가격 열람 이후 5만 건에 육박하는 하향 요구가 쏟아졌지만 국토교통부는 단 2300여 건만 수용했다. '깜깜이 산정' 논란을 벗겠다고 내놓은 공시가격 산정 기초자료도 미흡한 수준이어서 조세 저항 움직임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국토부는 2021년도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29일자로 결정·공시한다고 28일 밝혔다.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 상승률은 전국 평균 19.05%다. 지난달 국토부가 공개했던 초안(19.08%)보다는 0.03%포인트(P) 낮아지긴 했어도 2007년(22.7%) 이후 14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지난해 정부가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반영률)을 2035년까지 90%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세우면서 올해 공시가격은 예년보다 가파르게 올랐다.
지역별로는 세종(70.3%)과 경기(23.9%), 대전(20.6%), 서울(19.9%) 순으로 공시가격 상승률이 높았다. 서울에선 노원구(34.6%)가 가장 많이 올랐고 성북(28.0%)·강동(27.1%)·동대문구(26.8%)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공시가격이 오르면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사회보험료 등이 줄줄이 오른다. 1주택자 종부세 부과 기준인 공시가격 9억 원 초과 공동주택은 전국 기준 52만3983가구다. 초안보다는 637가구 줄었지만 지난해(약 31만 가구)보다는 20만 가구 넘게 늘었다. 전국 공동주택 중 3.7%에 달하는 비중이다. 서울은 41만3000가구(16%)가 공시가격 9억 원이 넘어섰다.
정부는 이날 그간의 공시가격 관련 의견 접수 및 조정 현황도 함께 공개했다. 전국에서 4만9601건(전체의 0.35%)의 의견이 접수됐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5만6355건 이후 14년 만에 최대다. 작년(3만7410건·0.27%)과 비교하면 32.6% 폭증했다.
민원의 절반은 서울에서 나왔다. 서울 지역에선 나온 이의 제기는 2만2502건으로 전체의 45%을 넘어섰다. 부산도 작년 486건에서 올해 4143건으로 급증했고, 올해 공시가격이 평균 70% 뛴 세종의 경우 275건에서 4095건으로 15배나 불어났다.
제출된 의견 대부분은 '공시가격을 내려달라'는 요구였다. 4만8591건으로 98%에 달했다. 하향 조정 의견의 62%는 공시가 6억 원을 초과하는 주택에서 나왔다.
5만 건에 육박하는 민원 폭주에도 정부가 받아들인 의견은 단 5%(2485건)에 불과했다. 지난해 조정률(915건·2.4%)보다는 두 배 가량 늘었지만 95%에 달하는 의견에 대해선 사실상 퇴짜를 놓은 셈이다. 이 때문에 서울과 세종을 중심으로 주택 소유자들의 조세저항 움직임이 거세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특히 정부는 이날 발표에서 '깜깜이' 공시가 산정 논란을 벗기 위해 공시가격 산정 기초자료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공시가격·주택 특성자료·가격 참고자료·산정 의견 등이 담겼다. 문제는 이같은 자료는 건축물대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인데다 이를 근거로 공시가격을 어떻게 산정했는지도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공시가 산정의 투명성을 높일 핵심인 적정 시세와 시세 반영률이 명시돼 있지 않은 것이다.
당장 보유세(재산세+종부세) 부담 가중이 불가피해진 상황에서 공시가격 급등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하는 데 한계가 뒤따른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정부가 내놓은 기초자료 예시는 원론적인 수준이어서 깜깜이 공시 논란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다"고 내다봤다.
함영진 빅데이터 랩장은 "공시가격 자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가격이 급등한 지역을 중심으로 조세 저항이 거세질 수도 있다”며 “이참에 당정 차원에서 국민의 보유세 부담을 덜어 주는 쪽으로 세제 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