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과 특성상 많은 환자가 알레르기라는 진단 범주에 속하기에 계속 똑같은 질문을 하는 환자들에게 의사도 같은 대답을 반복하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친절하게 설명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답이 사무적이 되고, 더 시간이 지나면 약간 짜증이 섞일 수도 있다.
의과대학 시절, 질병에 대해 공부할 때 우선 질병의 원인이 주-욱 나열되는데 ‘x x x x, family history, idiopathic’ 이런 식이다. 끝에 ‘family history, idiopathic’가 항상 붙어 있었다. 학생 때는 그런가 보다 했다. 의사가 되고 오래 진료를 하다 보니 ‘family history, idiopathic’이 끝이 아니라 처음에 나와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맨 먼저 언급해야 할 중요한 원인이므로. ‘family history’는 유전이나 가족력이고, ‘idiopathic’은 불명확하다, 잘 모르겠다는 뜻으로 면역력과 관계 있다.
이를 뭉뚱그려 표현하면 체질이고, 더 알기 쉽게 말하면 팔자소관이 아닐까 싶다. 종교적으로는 신의 뜻이거나 업(業)일 테고. 담배를 안 피웠는데 폐암에 걸리는 경우도 꽤나 많고, 친구 아버님은 60년 이상 담배를 피웠어도 멀쩡하시다. 워낙 생생해 제일 오래 살 거라는 말을 듣던 고향친구는 파킨슨병에 걸려 환갑 전에 사망했다. 이를 의학적으로 명쾌하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난감하다. 그럼 이제 어찌해야 하나. 병에 걸릴지 아닐지 모르니 대충, 아무렇게나 살아야 하나. 그건 아니다. 아프지 않은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며 착하고 겸손하게 살 일이다. 그러다 병에 걸리더라도 왜 하필 나냐고 화를 내거나 부정하지 말고 순순히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필요한 말이다.
유인철 안산유소아청소년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