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투자가 과열 양상을 띠고 있다. 넘치는 수요에 가격도 롤러코스터다. 대장주인 비트코인은 한때 1개당 8000만 원을 호가하다 5000만 원으로 주저앉더니 26일 기준 6000만 원을 웃돌고 있다. 이를 두고 흔히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버블을 떠올린다. 실제로는 무가치한 튤립에 대거 투기자금이 몰리면서 비정상적인 급등세를 보이다 순식간에 거품이 빠져 패닉을 불러왔고, 결국 정부가 개입해 거래액의 5~10%만 지급하는 것으로 수습했다.
문제는 가상화폐는 ‘물려 있는 돈’의 대부분이 미래세대인 2030세대의 것이라는 점이다. 튤립 버블은 튼튼한 실물경제를 바탕으로 파국을 면했다지만, 지금은 실물인 부동산 가격이 급등해 갈 곳을 잃은 미래세대의 돈이 쏠린 터라 모면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2월 기준 암호화폐 거래소를 이용하는 이용자 수는 월 300만 명이 넘었고 이 중 59%가 2030세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즉, 거품일지 모르는 실체도 없는 가상화폐에 미래를 맡기고 있는 꼴이란 것이다.
이런 현실 탓에 정부·여당은 곤혹스럽다. “거품은 꺼지는 게 맞다”는 원칙적 입장만 가지고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2018년에는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이, 2021년에는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원칙만 바라보고 ‘진압’에 나섰지만, 2030으로부터 ‘꼰대’라는 비아냥만 들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진퇴양난이다. 직전 4·7 재보궐 선거에서 4년 만에 참패하고 내년 대선·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 그렇지 않아도 이반한 2030세대의 공분을 행여 건드릴까 조심스럽다. 한 민주당 소속 국회 정무위원이 통화에서 “거품이 꺼지는 게 맞지만, 물린 돈이 너무 많아 함부로 말을 못 꺼내겠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거품을 빼는 것’이 아니라 ‘거품이 일어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가상화폐가 튤립과 같은 결말을 맞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억지로 없는 가치를 만들라고 하는 게 아니다. 가상화폐가 주류시장에 편입되고 있다는 시각은 꽤 있다. 헤지펀드 밀러 벨류 파트너스 창립자이자 최고 투자 책임자인 빌 밀러(Bill Miller)는 CNBC에 출연해 “현 가격은 거품이 아니며 주류로 편입되는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에 요망되는 건 투기라며 밀어내지만 말고 엄연한 자산으로 연착륙되도록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미 9월부터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법(특금법) 개정에 따라 가상화폐 거래소가 실명 확인 가능 입출금 계좌를 받고, 내년 1월 1일부터 투자이익에 세금을 부과하는 등 첫걸음은 뗀 상태다. 정보공시 의무화와 투자자 보호책을 마련하고, 공직자 재산신고 목록에 넣는 등 법적으로 자산으로 인정하는 기반을 다져야 한다.
물론 제도화 과정에서 가상화폐 시장에 영향을 줘 단기적으로 불안해지면 2030의 푸념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당장 선거에 매몰돼 ‘튤립 공황’과 같은 결말을 방치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초래하고 역사적 책임을 물릴 수밖에 없다. 정치의 정의는 권력을 유지하는 활동이지만 그 목적은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제 살 깎기도 감수하는 용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