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완의 복지플랫폼] 출산율 0명대의 위험사회

입력 2021-04-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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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2020년 합계출산율 0.84명. 우리 사회는 전세계에서 유례 없는 출산율 0명대의 초저출산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출생아 수로 보면 1985년 66만명에서 2017년에 절반 수준인 35만명으로 떨어지고, 불과 4년 만인 2021년에 29만명으로 급감했다. 저출산의 빠른 속도와 수준이 다른 국가에 비할 바 없다.

그런데 초저출산 현상의 무게에 비하면 국가 차원의 반응은 오히려 조용하다. 코로나19라는 더 큰 쓰나미에 덮였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우리 사회는 그 전부터 빠른 속도로 출산율이 낮아져 왔고 이미 2018년부터 출산율 0명대에 진입했다. 아니면 국가가 저출산 대응에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지난 15년간 225조원을 쏟아부은 저출산정책들이 적어도 현재까지 아무 효과가 없음을 인정해야 하는데, 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개별 지자체들은 인구소멸의 위기감 속에 출산장려금과 같은 대응책 마련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대학 진학연령 인구가 지난 40년간 절반으로, 20년 후까지 또다시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급감하는 상황에서, 이미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들이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할 것인가 아니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망할 것인가가 공공연히 논의된다. 파장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초등학교 폐교도 흔해진 요즘, 가입자가 크게 줄어드는 사립학교교직원연금의 기금은 국민연금보다 먼저 고갈될 것이다.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 ‘연못 속의 고래’라 불리는 거대한 국민연금 기금도 2040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소진되기 시작하여 십여 년 후면 고갈될 것이고, 인구절벽과 고령화가 겹쳐진 상황에서 후세대에게는 지금보다 3배 넘는 보험료율로 내게 해야 할 판이다. 이처럼 인구절벽을 맞이하는 전 영역에서 일파만파의 쓰나미가 예고된 가운데, 국가 차원의 심각한 위험으로 인식하고 대안을 논의하는 목소리는 신기하리만큼 작고 부분적이다. 실질적인 파장은 자명하고 치명적이지만, 당장의 문제가 아니고 어느 한 부분의 노력만으로 바뀔 문제는 아니라는 안일하고 무력한 인식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저출산의 문제는 기후변화 문제와 닮아 있다.

혹시 초저출산이 일시적 현상인 건 아닐까.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13세 이상 국민 중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2012년 62.7%에서 2018년 48.1%로 크게 감소했고, 특히 미혼 여성의 경우에는 43.3%에서 24.4%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이제 비혼식도 자연스러울 만큼 결혼이 선택이라 믿는 젊은이들에게 가족주의의 해체와 삶의 ‘개인화’는 이미 보편적 정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변화 속에서 출산율이 자연히 높아지리라는 기대는 오히려 낯설다.

심화되는 저출산 현상은 노동의 불안정화가 생애 위험을 생산하는 ‘위험사회’의 결과이다. 울리히 벡에 따르면, 이 위험사회에서는 분배나 평등이 더 이상 계급 간 불평등의 문제가 아니며,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에 대한 광범위한 일반 시민의 불안의 문제로 변모된다. 개인이 삶에서 체험하는 생애 위험에 대해 사회가 적절한 제도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라이프스타일의 선택을 통해 생애 위험에 대처하는 ‘개인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는 벡의 통찰은 우리 사회 청년층의 변화를 정확히 설명해 준다. 청년층에 만연한 불안정한 삶, 그 기저에 깔린 불안, 그리고 비혼의 선택과 저출산은 사회적인 문제가 사생활의 개인적 충돌이라는 형태로 미시화되어 나타난 위험사회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위험사회의 불안정성을 삶에서 체험하며 이를 오롯이 자신의 ‘선택’으로 메꿔 가는 2030 청년들이 이 위기사회의 주인공이다. 인구절벽의 위기를 현실로 맞아야 하는 이들도 바로 이 세대이다. 그렇게 보면 그간의 저출산 대응에서 이미 변화의 주체인 청년들을 특정 제도적 지원의 대상으로 수동화했던 것에 대해 우리 사회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청년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자녀 양육의 비용을 줄여주기 위해’를 넘어서,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무엇을 어떻게 지원해야 할 것인지 청년들에게 물어야 할 때다.

벡의 위험사회 시나리오에도 분명 희망과 낙관이 담겨있다. 위험에 대한 개인화된 대응은 일견 무질서한 아노미로 보일지라도, 귀속적이고 획일화된 집단적 정체성으로부터 개인들이 해방되는 과정이며, 동등한 개인의 인권에 기초한 새로운 공동체 형성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불안정하고 힘든 위기 속에 원자화되고 개인화된 청년들은 오히려 더 평등하고 폭넓게 연대할 수 있다. 청년들이 지역사회와 전 지구적 수준에서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청년들이 자신들과 세상을 위한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협력할 수 있도록 힘을 다해 지원하는 것이 출산율 0명대의 위험사회에서 우리가 해야 하고,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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