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 90% 반영 정부와 대치
"실수요자 DTI·LTV 완화"엔 금융위 "청년층에 혜택" 화답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계기로 부동산 정책 재검도를 위한 여당 움직임이 뚜렷하다. 규제 일변도 정책으로는 성난 부동산 민심을 달랠 수 없단 위기감에서다. 정부는 정책 일관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치권 흐름을 주시하고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야당과 부동산 규제 완화 경쟁을 벌였다. 재건축 규제 완화가 대표적이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주자로 나섰던 박영선 후보는 35층 층고 제한 완화와 분양가 억제를 전제로 한 민간 재건축 활성화를 공약했다. 이는 민간 재건축 사업에 재건축 부담금 부과와 2년 실거주 요건(2년 동안 재건축 단지에 실제로 산 소유주에게만 새 아파트 입주권을 주는 제도) 등 여러 제동장치를 마련해 온 정부 정책 흐름과 상반된다. 그간 문재인 정부는 주변 집값 자극, 개발이익 사유화 같은 이유를 들어 민간 재건축 사업에 부정적이었다.
민주당 캠프는 공시가격 현실화 속도 조절론도 들고 나왔다. 1년에 공시가격 상승 폭을 10% 이내로 제안하겠다는 구상이다.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 관련 세금을 매기는 과세표준인 공시가격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커지는 조세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서다. 이 역시 2035년까지 공동주택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반영률)을 90%로 올리겠다는 정부 로드맵과 부딪힌다. 올해 서울지역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평균으로만 19.9% 상승했다.
정부는 일단 원칙론을 천명하고 있다.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취임 직후인 이달 초 "주택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시기"라며 여당발(發) 규제 완화론을 경계했다.
주택 정책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에서도 공시가격 상승률 제한 공약에 대해 "별도 캡(상한)을 씌우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뜻을 밝혔다. 10% 상한을 설정하게 되면 시세가 비슷한 단지 중 10% 오르는 집이나 20% 오르는 집이나 다음 해 공시가격 상승 폭은 똑같게 돼 또 다른 형평성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간 공시가격 현실화를 주장해온 시민사회에서도 반발 목소리가 나온다.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은 "중저가 주택은 공시가격 현실화에 따른 세 부담 증가가 미미하다. 공시가격이 과표로서 역할을 하는데 지금까진 시세와 간격이 너무 크다는 문제가 있었다"며 "조세 정의와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공시가격 현실화는 로드맵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번 서울시장 선거로 성난 부동산 민심이 드러난 상황에서 정부가 마냥 원칙론만 지킬 수도 없다. 당장 내년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서다. 공시가격 문제만 해도 국토부 내부에선 공시가격 상향에 따른 세(稅) 부담 경감 방안을 고민 중이다.
일부 규제를 완화하는 데는 당·정이 주파수를 맞춰가는 모습이 뚜렷하다. 주택 실수요자 대출 규제 완화가 대표적이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9일 "무주택자나 청년들이 실제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자는 측면에서 총부채상환비율(DTI·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율) 등 금융 관련 규제가 다소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같은 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신용카드 결제액·자동차 할부금 등 부채성 지출을 포함한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비율)을 조정하되 청년층에게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담보가치 대비 대출 한도 비율)과 DTI를 완화하는 방안이 기본 방침"이라고 밝혔다.
DTI·LTV가 완화되면 지금까지 규제 일변도였던 주택 금융에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일각에선 대출 규제 완화가 주택시장 유동성을 더 키울 것이라고도 예상한다. 이에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대출 완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주택 구매 자금 여력이 부족한 청년층"이라며 "서민·실수요자에게 규제를 완화한다는 시그널은 줄 수 있겠지만 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