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 혼란 ‘악화일로’…수에즈운하 마비·대만 반도체업체 가뭄

입력 2021-03-25 16:00 수정 2021-03-25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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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즈운하 통항 재개 최대 수주 걸릴 수도
글로벌 경제 회복 막대한 타격 위험
대만, 주요 산업단지 물 공급 줄여

국제 무역의 공급망 혼란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대유행) 이후 수요 예측 실패로 발이 묶였던 글로벌 공급망은 악재가 끊임없이 터지면서 정상화가 갈수록 요원해지고 있다. 전 세계 경제 회복에도 그만큼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이집트 수에즈운하가 초대형 컨테이너선에 가로막히는 대형 사고가 발생해 이곳을 오가던 선박의 운항이 차질을 빚고 있다. 2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전날 오전 7시 40분께 대만 선사 에버그린의 파나마 선적인 ‘에버기븐호’가 좌초되며 수에즈 운하 남쪽 끝에 멈춰섰다. 선박은 뱃머리가 한쪽 제방, 선미는 반대쪽 제방에 각각 걸치면서 운하를 대각선으로 가로막았다. 2018년 건조된 이 선박은 길이 400m, 너비 59m, 무게 22만 톤에 2만 개 이상의 컨테이너를 실을 수 있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이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강한 모래 폭풍에 통제력이 상실한 데 따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현재 수에즈운하관리청(SCA)이 예인선 10척을 투입하는 등 복구 작업에 들어갔지만, 사고 선박 크기가 워낙 대규모인 데다 선박 일부가 모래톱에 박혀 있어 예인이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당초 이틀 내외로 예상되던 통항 재개가 수 주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수에즈운하는 글로벌 해상 물류 대동맥이다. 연간 2만 척, 하루 평균 50척의 선박이 이곳을 오간다. 전 세계 물동량의 12%가 이곳을 지나간다. 이집트는 지난해 수에즈운하로 56억 달러(약 6조3400억 원)를 벌어들일 정도로 쏠쏠한 외화수입원이기도 하다. 특히 수에즈 운하는 원유·천연가스의 전략적 수송로로 꼽힌다. 페르시아만 산유국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유조선뿐만 아니라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를 아시아로 수송하는 선박도 줄을 잇는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수에즈 운하를 거치는 세계 석유 수송은 전체의 9%, LNG는 전체 8%를 각각 차지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번 수에즈 운하 마비 사태로 1300만 배럴 원유를 실은 유조선 10척이 운송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미국의 일일 원유 생산량(1100만 배럴)을 웃도는 규모다.

전문가들은 수에즈 운하에 좌초된 컨테이너선 예인 작업이 더뎌지게 되면 운하 앞에서 체류하는 선박이 늘어나게 되거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우회하는 경로를 택하는 선박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컨테이너선이 남아공 우회경로를 택하면 운송 기간은 일주일가량 더 늘어나게 된다.

원유 공급 불안에 이날 5월 인도분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3.42달러(5.9%) 급등한 배럴당 61.18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북해 브렌트유 5월물 역시 전날보다 3.62달러(6%) 뛴 배럴당 64.41달러에 거래를 끝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수에즈운하의 마비 상태가 길어지면 코로나19 위기에서 회복을 시도하는 세계 경제에 새로운 악재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글로벌 공급망은 반도체 부족과 지난달 미국의 기록적인 한파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글로벌 반도체 제조 허브인 대만은 수십 년 만의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면서 내달부터 반도체업체가 있는 일부 도시에서 물 공급을 줄이기로 해 시장의 우려를 더 고조시켰다. 대만 정부는 이날 6년 만에 물 부족 ‘적색 경보’를 발령하고 내달 6일부터 타이중에 있는 주요 산업단지 두 곳의 물 공급을 15% 줄이기로 했다. 타이중에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TSMC와 마이크론테크놀로지 공장이 있다. 반도체 공정에는 하루 수십만t의 물이 투입된다. 대만 가뭄이 장기화할 경우 반도체 생산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반도체 부족 현상은 갈수록 더 심화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을 강타한 기록적인 한파로 텍사스 등 주요 도시의 수도관이 동파되고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하면서 NXP, 인피니언 같은 차량용 반도체 전문업체들이 텍사스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했다. 여기에 자동차 반도체 메이저 공급업체인 일본 르네사스의 이바라키현 공장도 19일 예기치 못한 화재가 발생해 생산이 멈췄다. 제너럴모터스(GM)와 폭스바겐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의 생산 중단도 속출하고 있다. 컨설팅업체 앨릭스파트너스에 따르면 올해 반도체 품귀로 인한 전 세계 자동차업계 매출 감소분은 606억 달러(약 68조8476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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