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국내주식 비중조절? “전 국민 노후자금으로 증시부양 안 돼”

입력 2021-03-25 15:34 수정 2021-03-25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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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21년도 제1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조흥식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21년도 제1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조흥식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연금은 코스피 상승을 막는 ‘배신자’일까? ‘동학개미’는 본인의 노후 연금과 수급 전쟁을 벌이고 있는 걸까?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 확대 고려를 두고, 경제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 국민의 노후자금이 증시부양에 사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국민연금은 안전성·수익성을 목표로, 독립적인 자금 운용 기관이어야 하는데, 정치적 요소가 개입돼 방향이 바뀐다면 신뢰도 추락에 이어 존속 가능성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민연금은 오는 26일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 회의 안건에 전체 자산 중 국내 주식 목표 비율 조정 여부를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개인투자자 중심으로 코스피 조정론의 책임을 국민연금에게 묻자 여론을 의식해 포트폴리오 비중 조절 논의까지 번진 셈이다. 올해 들어 연· 기금 계정은 코스피시장에서 15조 원가량의 주식을 정리한 것으로 집계됐다. 해당 계정의 대부분이 국민연금 자산으로 추정된다.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 조절은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자산 재조정) 계획에 기인한다. 국민연금 기금위가 지난해 5월 의결한 ‘2021~2025년 중기자산배분안’에 따르면 2025년 말경 목표로 세운 국내 주식 비중은 15% 내외다. 올해 목표치인 16.8%에서 점차 줄이는 방향이다. 문제는 지난해부터 국내 증시가 가파르게 상승해 목표 비중을 넘어서면서 부각됐다. 애초 계획한 비중을 맞추기 위해 국내주식을 팔자 동학개미 원성이 국민연금에게 쏟아지고 있어서다.

국내 경제학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외부 압력을 의식해 포트폴리오 비중을 조절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는 2200만 명이다. 연금수급자는 500만 명을 넘어섰고, 운용자산은 750조 원 수준이다. 전 국민의 노후보장이 목적인 국민연금이 이익집단에 휘둘려선 안 된다고 역설한다. 과거에도 국민연금이 주가 부양에 동원된 사례가 있었는데, 손실은 오롯이 국민연금 가입자가 떠안아야 했다.

박상인 경실련 정책위원장·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국민연금은 대다수 국민이 가입한, 안정성·수익성을 목표로 두는 기금이다. 주가가 조정을 받아야 하는 구간에서 증시를 부양하기 위해 전 국민의 노후자금을 쓰는 건 문제가 있다. 만약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 확대로 인해 조정 타이밍을 놓친다면 다른 투자자들의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 여론을 의식해서 기금 운용 방향을 바꾸는 건 더 큰 문제다. 게임의 룰, 원칙을 따라 만들어야 하는데 독립성이 훼손된다는 방증이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민연금의 독립성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선거를 앞두고 개인투자자 표심을 잡기 위한 정치권의 입김이 거세지면서 국민연금의 방향까지 움직이게 한다는 지적이다. 단기적인 선거 결과를 위해 장기적 목표에서 운용돼야 하는 전 국민의 노후자금이 휘둘리고 있다고도 분석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민연금은 투자 결정은 100% 국민연금이 책임져야 한다. 대통령, 집권 여당, 동학개미라도 그 부분에 대해서 압력을 넣는 건 적절치 않다. 선거를 앞두고 이익단체들이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는데, 꼬리가 몸통을 흔들어선 안 된다. 국내 금융·공공기관들이 정치권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강명헌 단국대 명예교수도 “경제 환경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는 건 당연하지만 동학개미가 소리를 내서 주식시장을 활성화한다는 계기는 잘못됐다. ‘국내 주식시장 활성화’ 차원에선 나쁘지 않지만, 혹시라도 손해를 본다면 국민의 노후자금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단기적으로 표심을 의식한 상황으로 해석돼 문제가 많다”고 부연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장기적 전략 수립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국민연금은 이미 고갈이 예정된 자금으로, 고갈 시기를 늦추는 게 중요하다. 자금 운용과 관련된 방향성, 전략, 포지션 등은 장기적인 수익률을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현재처럼 투표권에 의식해 투자 비중을 검토하는 방향은 우려스럽다”고 부연했다.

김종훈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영향평가센터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은 장기계획을 세우고 3년, 1년 단위로 끊어서 변화를 반영해 자금을 운용한다. 외부 여론이 급격하게 바뀌자 기금위 안건에 포트폴리오 비중 조절 안건이 올라갔다고 하지만, 시장 상황에 대응하는 정도다. 상식을 벗어나는 범위에서 대응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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