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에게 주말을 더 특별하게 해주는 음식이 있다. 바로 라면이다. 딸에게 인스턴트 식품을 주기 싫은 엄마 마음 때문에 라면을 먹을 수 있는 공식적인 날을 주말 한번으로 제한해왔다. 딸의 주말 식사 중 한끼는 '라면과 김치'가 공식이 됐다. 바꿔 말하면 라면은 그만큼 아이가 먹고 싶어하는 음식이라는 얘기다.
라면과 김치는 지난해 나란히 수출 최대 실적을 경신하면서 K푸드로서 위상을 당당히 보여줬다.
지난해 김치 수출액은 1억 4451만 달러로 전년대비 37.6% 신장했다. 같은 기간 라면 역시 6억362만 달러의 수출액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6억 달러 고지를 넘어섰다.
라면 종주국은 일본이다. 일본의 ‘라멘’이 유래지만 한국은 1960년대부터 라면을 생산하고 일본라면의 담백함 대신 맵고 깔끔한 맛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글로벌 라면 시장 1위 기업은 일본 기업이 아닌 중국 기업이다. 자국 내수 시장 공략에 성공하며 중국의 캉스푸는 세계 라면 시장점유율 13.4%로 부동의 1위 자리를 굳혔다. 라면 종주국인 일본은 닛신이 9.9%로 2위, 토요스이신이 7.3%에 4위에 머무른 것에 만족해야 했다.
한국 기업으로는 농심이 5위에 이름을 올리며 선전했다. 농심은 매년 점유율을 확대하며 지난해에는 5.7%까지 시장을 키웠다. 4위 토요스이신과의 격차는 1.6%P(포인트), 3위 인도푸드와의 격차는 1.8%P에 불과하다. 다른 해외 라면 기업들이 수년째 점유율 변동이 없는데 비해 농심은 예외적으로 매년 0.3~0.4%P씩 야금야금 시장을 늘려오고 있다. 수년내 농심이 세계 라면 시장 빅3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기는 이유다.
종주국이 아닌데도 국위를 선양하는 라면과 달리 김치는 종주국임에도 종주국 지위를 지키지 못한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최근 불거진 ‘파오차이(泡菜)’ 논란은 뜨거운 감자다. 중국에서 김치를 유통하려면 반드시 ‘파오차이’라는 표기를 해야 한다. 파오차이는 절임채소로 발효식품인 김치와는 차이가 있다. 1990년대부터 김치를 ‘기무치’라 명명하며 한국을 자극하던 일본은 국제표준화기구에 ‘기무치’를 국제 표준용어로 등재하려 시도했다 실패한 바 있다. 당시 국민들의 분노의 화살이 20여년이 지난 지금 중국을 향하게 된 셈이다.
정부의 안일함에 대한 비판도 일고 있다. 중국 식품안전국가표준에서 ‘김치’에 ‘파오차이’라고 표기하도록 규제하는 움직임이 이는 동안 정부는 수수방관했다. 뿐만 아니라 논란이 불거지자 농림축산식품부는 “파오차이와 김치를 병기할 수 있다”는 애매한 해명을 내놨다. 중국 정부에 정식으로 건의해 외교적인 해법을 내놓아도 모자랄 판에 ‘김치’ 표기를 병기할 수 있다는 옹색한 답변으로만 일관하는 것은 종주국의 지위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음식인 김치조차 지키지 못하면서 한식 세계화와 K푸드의 선전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한식세계화와 K푸드의 수출은 정부가 아닌 민간기업이 주도하고 있지만, 이들이 한식을 널리 알릴 수 있도록 각국의 규제에 대응하는 것은 기업의 영역이 아니라 정부의 몫이다.
주말 딸아이에게 라면을 끓여주며 '라면은 자랑스럽고 김치는 부끄럽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