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반도체 대란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2분기 들어 반도체 부족과 가격 상승이 정점에 달할 전망이라 스마트폰, 자동차 등 산업 전반에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D램ㆍ낸드플래시) 수급 불균형이 2분기 들어 심화할 전망이다.
반도체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올해 2분기에 서버 D램 가격이 13∼18%, 낸드플래시 가격은 3∼8% 인상될 것이라 내다봤다.
트렌드포스는 “PC용 D램과 서버 D램, 모바일 D램 등 전 제품에서 가격이 오를 것”이라며 “낸드플래시 컨트롤러 공급 부족으로 SSD 등 완제품에 대한 재고 확보 움직임도 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통합전력관리칩(PMIC)이나 이미지센서(CIS)도 수급이 불안정해 20%가량씩 가격이 뛰었다. ‘전자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MLCC(적층세라믹콘덴서) 가격도 10~20% 오를 전망이다.
이번 사태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온라인을 활용하는 빈도가 높아짐에 따라 반도체 수요가 폭등하며 벌어졌다. 여기에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 오스틴 공장이 전력 문제로 가동을 멈췄고, 일본 시스템 반도체 회사 르네사스 공장도 지진으로 생산을 중단하며 공급 부족 사태까지 겹쳤다. 대만에서는 극심한 가뭄으로 용수부족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반도체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며 제품 단가도 연이어 인상된 것이다.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전방 산업의 부담도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무선사업부가 요구하는 모바일 AP 물량 공급에 힘이 벅찬 상태다. 최근 공개한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S 21’에 5㎚(나노미터=1억분의 1m) 공정 기반 ‘엑시노스 2100’을 탑재하는데, 이 물량이 부족한 것이다.
고동진 삼성전자 ITㆍ모바일(IM) 부문장 사장도 반도체 대란의 가능성을 인정했다. 고 사장은 전날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반도체 공급과 수요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는 상태는 맞다”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사와 접촉하고, 임직원들이 다방면의 노력을 들이고 있다”라고 했다.
완성차 업계도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로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대만 TSMC가 세계 공급의 70%를 점유하는 차량 전력제어용 마이크로 콘트롤 유닛(MCU)의 공급 지연이 확산하며 GM,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포드, 토요타, 테슬라 등 주요 완성차 제조사의 공장 가동 중단이나 생산량 감축이 확대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 역시 코로나19 사태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자동차 수요가 줄어들자 완성차 업계는 브레이크와 핸들링, 유리창 조정, 거리 센서 등에 필요한 차량용 반도체 주문을 줄였는데, 예상보다 빨리 수요가 회복되자 공급 부족에 직면했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는 2분기에 정점을 찍고 3분기까지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MCU의 리드 타임(발주부터 납품까지의 소요시간)이 26주~38주임을 고려할 때 3분기까지는 세계적인 공급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미 국내에서도 한국지엠(GM)이 부평 2공장의 생산량을 절반으로 줄인 상태다. 현대차와 기아는 기존에 확보한 재고 덕분에 즉시 감산을 검토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부 반도체는 수급이 원활치 않은 상황이다.
국산 중형차를 기준으로 약 120개의 반도체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급차와 친환경차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전자장비를 갖춘 만큼,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자칫 업계의 전동화 전환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모든 국내 제조사의 구매 부서가 물량 확보와 수급 조절에 총력을 기울이며 생산 차질을 막으려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