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은 '파크원'으로 향하는 인파로 가득했다. 지난해 7월 완공된 파크원은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이어 한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로 332m에 이른다. 63빌딩과 서울국제금융센터(IFC)에 이어 여의도의 새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파크원과 길 하나를 마주하고 위태한 건물이 서 있다. 목화아파트다. 312가구짜리 이 아파트 단지는 1977년 입주를 시작했다. 올해로 45살박이 목화아파트는 지난해 실시한 정밀안전진단에서 최하점인 E등급을 받았다. 안전진단 과정에서 목화아파트는 외벽 균열, 철근 노출 등 안전성 문제를 지적받았다. 원칙대로면 안전진단에서 E등급을 받으면 추가 검증 없이 바로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다. 그럼에도 목화아파트 주민들은 재건축을 쉬이 기대하지 못한다. 서울시에서 재건축에 필요한 지구딘위계획 확정을 미루고 있어서다.
여의도엔 두 개의 시간이 흐른다. 업무지구에선 시대 변화에 맞춰 마천루가 세워지고 헐리고를 반복하지만 주거지역의 시간은 50년 전에 멈춰 있다. 주민들은 생존권 보장을 위해서라도 재건축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편에선 여의도 재건축이 부동산 시장에 미칠 파급력을 우려한다.
현재 여의도엔 맏이인 초원아파트(1971년ㆍ153가구)를 포함해 아파트 24개 단지(1만121가구)가 들어서 있다. 이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16개 단지(7746가구)가 재건축 연한인 40년을 넘겼다. 14개 단지는 이미 안전진단에서 재건축 판정을 받았고, 두 곳(미성ㆍ은하아파트)은 정밀안전진단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여의도 재건축엔 노후도와 안전성에 더해 정치적 변수까지 끼어들었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각 단지가 제출한 재건축 계획을 번번이 반려하고 있다. 지역 단위 도시계획인 지구단위계획과 정합성을 맞춰야 한다는 명분에서다. 정작 그 지구단위계획은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다.
2018년 '여의도 통개발' 구상이 불거져 나오면서 부동산 시장을 들쑤셨던 트라우마 탓이다.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이 여의도 개발 의지를 내비치자 여의도 아파트값이 몇 주 만에 수억 원씩 올랐다. 한동안 잠잠하던 서울 집값이 다시 상승하는 기폭제가 됐다. 국토교통부가 서울시 계획을 꺾은 후에도 여의도 재건축 시장은 지금까지 '판도라의 상자'로 남아 있다.
그 판도라의 상자가 다시 들썩이고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야에서 재건축 규제 완화 움직임이 일고 있어서다. 대부분 단지가 재건축 첫 관문인 안전진단을 통과했다는 점도 호재다. 가격도 들썩인다. 지난해 15억 원대던 목화아파트 전용면적 89㎡형은 올 1월 18억 원에 거래됐다. 지금은 20억 원까지 호가한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는 "여의도는 서울의 상징적인 도심 역할을 하고 있지만 주거지역은 거주 환경이 상당히 악화돼 있다"며 "효율적인 토지 이용을 위한 체계적인 대규모 복합개발 계획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