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5일 가덕도를 찾았다.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기 하루 전이었다. 문 대통령의 가덕도 방문은 4월 보궐선거가 한 달 남은 시점이라 선거 개입 논란에 휩싸였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관권 선거의 끝판왕”이라며 “선거 중립에 대한 최소한의 의지도 내팽개쳤다”고 비판했다. 강은미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선거를 위해, 표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겠다는 생각은 대국민 사기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선거 개입 논란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2000년대 이후 당선된 대통령들은 모두 선거 개입 시비에 휘말렸다. 이중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에 소추되기도 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크고 작은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문 대통령의 가덕도 방문도 선거 개입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다만 역대 사례와 전문가 의견을 종합했을 때 선거법 위반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각종 기자회견에서 특정 정당(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특히 방송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에서 발언은 큰 논란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에 표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정말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 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의 해당 발언 이후 조순형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표는 “대통령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특정정당을 위한 불법적 사전 선거운동을 계속해왔다”며 탄핵을 추진했다. 선거법 위반과 측근 비리 및 부정부패, 경제와 국정 파탄 등 세 가지 이유였다. 2004년 3월 12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됐고 노 전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됐다.
헌법재판소는 노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기각했다. 다만 선거법 위반이 문제가 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노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이 공무원 중립의무를 위반했지만 대통령직에서 파면될 만큼 중대한 사유가 아니라는 이유에서 기각을 결정했다. 헌재는 “노 대통령의 발언이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왜곡하고 의회 민주주의를 훼손시킨다”면서도 “발언의 성격상 고의성, 능동성이 없는 데다 시기상 총선 후보 결정 전이어서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후에도 노 전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논란은 그치지 않았다. 2007년에도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좀 끔찍하다(6월 7일)”, “나는 열린우리당에서 선택한 후보를 지지한다(6월 18일)” 등 발언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선거법 위반 결정을 받았다. 다만 대통령이라는 특성상 형사처분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은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이 전 대통령은 4월 5일 식목일을 맞아 도라산 평화공원에서 열린 식목 행사에 참석했다. 돌아가던 중 이 전 대통령은 예정에도 없던 곳에 들렀다. 바로 은평 뉴타운 건설 현장.
이 전 대통령은 현장 근로자 6명과 악수를 했다. 이어 “복지 중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를 갖게 해주는 것”이라며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데 채용을 더 하라”고 지시했다. 해당 발언이 논란이 된 이유는 은평을에 출마한 이재오 당시 한나라당 의원 때문이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4대강 사업을 주도한 인물로 꼽혔다. 당시 상대 후보로 나온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에게 밀리고 있던 터라 도움이 간절했는데 이 전 대통령이 예고 없이 은평에 방문한 것이다.
야당은 이 전 대통령의 은평 뉴타운 방문을 노골적인 관권 선거라며 비판했다. 차영 통합민주당 대변인은 “자신의 오른팔 격인 이재오 의원을 구하기 위한 선거 개입”이라며 “양심이 있냐”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의 가덕도 방문을 향한 비판과 비슷하다.
다만 당시 논란은 노 전 대통령 때처럼 탄핵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여론이 여당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통합민주당은 당 차원에서 선관위 고발을 검토하는 등 법률 작업을 진행했지만 선관위는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 개입 비판을 받았다. 빨간 옷을 입고 부산에 방문했기 때문. 당시 여당은 새누리당이었고 빨간색은 상징색이나 다름없었다. 박 전 대통령은 그보다 조금 전 대구에도 방문하면서 노골적 선거 지원이라는 지적도 받았다. 청와대는 박 전 대통령의 행보가 경제적 목적이라고 해명했다.
당시 김성수 민주당 대변인은 “청와대는 경제 행보라고 변명하지만 목전으로 다가온 총선을 염두에 둔 정치적 방문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공천과 선거에서 친박 후보들을 지원하고 있다는 뜻을 분명히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근무할 때도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공직선거법 91조 3항 ‘누구든지 자동차를 사용해 선거운동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내용을 어겼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19대 총선 당시 부산을 방문해 손수조 당시 예비후보와 카퍼레이드를 진행했다. 다만 부산시선관위는 고의성이 없다며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2014년에는 ‘대통령 시계’를 두고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박 대통령은 설날을 앞두고 새누리당 의원과 당협위원장들에게 친필 사인이 들어간 시계를 나눠줬다. 야당은 이 시계가 6월 지방선거에 쓰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시계를 잘 활용하라는 식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다만 대통령의 시계 제작은 그전에도 있었고 선관위도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보내 논란이 종결됐다.
문 대통령은 25일 가덕도 방문에서 “숙원이 하루라도 빨리 이뤄질 수 있도록 조속한 입법을 희망한다”며 “정부도 특별법이 제정되는 대로 관련 절차를 최대한 신속히 진행하고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과거 대통령들의 선거 개입 논란과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볼 때 문 대통령의 가덕도 방문은 선거법 위반일 가능성이 작아 보인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장에 가면 선거법 위반이고 국회에서 법 통과를 시키면 선거법 위반이 아닌가”라며 “동남권 전체적인 발전을 도모하겠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은 대통령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국회에서 법을 통과시키려고 하고 있으니 빨리 통과시켰으면 좋겠다는 의미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공직선거법상 공무원과 특정 기관·단체의 선거운동, 공무원 등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 등의 선거운동은 불가능하다. 공직선거법 9조 1항에는 공무원이나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기관·단체를 포함한다)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