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조사 대상 애경산업으로부터 금품을 받고 내부 자료를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전직 환경부 공무원이 2심 재판을 다시 받게 됐다. 대법원은 정보유출 이후 뇌물을 받은 것도 수뢰후부정처사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4일 뇌물수수 등 혐의로 기소된 전직 환경부 서기관 최모 씨의 상고심에서 일부 수뢰후부정처사 부분을 무죄로 인정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최 씨는 환경부 가습기살균제 대응 TF 등에서 근무하면서 2017년 4월 18일~2019년 1월 31일까지 애경산업 직원에게 200만 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받았다. 그 대가로 환경부의 내부보고서, 논의 진행 상황, 가습기살균제 관련 소관부서와 주요 일정·동향 등 공무상 비밀을 누설한 혐의로 기소됐다.
특히 애경산업 등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메신저를 이용해 애경산업 직원에게 "휴대전화나 컴퓨터 자료를 미리 정리하라", "별도의 장비를 사용해서 반복 삭제해야 한다"고 조언한 혐의도 있다.
애경산업 직원은 최 씨로부터 조언을 받고 회사 캐비닛과 책상에 보관한 가습기살균제 관련 자료를 파쇄하고 법무팀 컴퓨터에 있던 파일도 검색한 뒤 삭제한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환경부가 공정하게 자신들을 구제해줄 것이라던 피해자들의 믿음이 무너졌고, 국정감사에서 애경의 질의자료는 환경부가 검찰에 제공할 자료로 비밀 보호의 가치도 있다"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은 “가습기살균제로 야기된 사회적 충격을 볼 때 책임 소재를 철저히 규명해야 하고 추가 조사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엄중한 제재가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는 점에서 최 씨의 범행은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1심 판결을 뒤집고 징역 10개월에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다만 1·2심은 최 씨가 마지막 부정한 행위를 하기 전인 2018년 10월까지 160만 원 상당의 뇌물수수 부분에 대해서는 수뢰후부정처사죄를 인정하면서도 그 이후 부분은 유죄로 인정하지 않았다. 죄명대로 뇌물수수 이후 부정한 행위가 이뤄져야 하는데 시간적 선후 관계가 맞지 않는다는 취지다.
그러나 대법원은 “뇌물수수 등의 행위를 하는 중에 부정한 행위를 한 경우도 포함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단일하고도 계속된 범의 아래 일정 기간 반복해 뇌물수수, 부정한 행위가 있고 인과관계가 인정돼 피해법익도 같다면 최후 부정한 행위 이후 뇌물수수 행위도 수뢰후부정처사죄의 포괄일죄로 처벌함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수뢰후부정처사죄의 포괄일죄가 성립하는 경우 뇌물수수 등 행위와 부정한 행위 사이에 개별적으로도 시간적 선후 관계가 엄격히 요구되는지 여부에 관해 판단한 사례”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