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공급 대책이 곧 나온다. 윤곽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핵심 방안은 역세권 고밀 개발을 통한 주택 공급 확대다. 역세권 범위를 넓히고(반경 350m→500m) 용적률도 끌어올려 도심 일대에 주택이 많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용적률(대지면적에 대한 건축 연면적의 비율)이 높아지면 그만큼 같은 면적의 땅에 더 많은 집을 지을 수 있다. 서울지하철 주변의 역세권·준공업지역·저층 주거지 고밀 개발 등 구체적인 내용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법적 기반도 이미 마련됐다. 역세권 복합용도개발 지구단위계획을 통해 주거지역 용적률을 700%까지 완화(지금은 최대 400~500%까지만 허용)하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계획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얼마 전 국무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이르면 4월부터 시행된다.
여기에 더해 정부와 여당은 ‘용도지역 변경(상향)’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를테면 일반주거지역을 준주거지나 상업지역으로, 준공업지역은 주거지역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용도 변경은 같은 면적에 얼마만큼의 건물(주택)을 지을지 허용하는 기준인 ‘용적률 상향’을 뜻한다. 가령 서울의 경우 일반주거지역이 준주거 및 상업지역으로 용도가 변경되면 용적률이 150~250%에서 400~600%까지 올라간다. 준공업지역이 주거지역으로 바뀌면 용적률은 250%에서 400%로 높아진다.
용도지역 상향 변경을 통해 저밀도 주거지를 고밀 개발하면 주택 공급 물량을 대폭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적지 않다. 용도지역은 도시를 관리하는 가장 핵심적인 구조다. 도시계획의 가장 기본적인 체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용도지역 변경은 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용적률은 용도지역에 따라 엄격하게 차등 적용된다. 도심 과밀 개발을 막고, 도시 경관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다. 서울시가 조례와 시행령을 통해 용적률을 국토계획법에 명시된 용적률보다 더 낮게 설정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토지마다 용도가 정해진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따라서 토지 용도를 바꾸려면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적법한 절차도 거쳐야 한다. 용도지역 변경이 사회적 합의는 물론 지역 주민의 다양한 의견 청취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져선 곤란하다.
난개발에 따른 주거 여건 악화도 우려된다. 민간 참여를 끌어내는 것도 쉽지 않다. 정부는 용도 변경을 통해 용적률을 높여주는 대신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공이 개발에 참여하고 개발이익은 철저히 환수한다는 입장이다. 이럴 경우 토지 소유주 등 민간 참여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단기적인 주택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루아침에 도시계획 체계를 흔들겠다는 건 아마추어적인 발상이다.
시장이 원하는 대책은 숫자 놀음에 그치는 공급 확대가 아니라 수요가 원하는 곳에 양질의 주택을 충분히 늘리는 것이다. 그런데 역세권·준공업지를 고밀 개발할 경우 주택 공급은 늘겠지만, 실상은 1~2동짜리 나 홀로 고층 건물만 잔뜩 들어서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질 좋은 주거단지 공급과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가용할 신규 부지가 많지 않은 서울에서 민간 중심의 재건축 활성화만큼 실효성 있는 공급 방안은 없다. 초과이익환수제나 분양가 상한제 등 재건축 사업을 옥죄는 규제는 그대로 둔 채 시장을 놀라게 할 만한 공급 물량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집값 폭등은 좋은 집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한 데 따른 정책 실패의 결과다. 시장이 원하는 주택을 적시에, 그리고 충분히 공급할 것이란 시그널을 시장에 주지 못하면 집값은 물론 전셋값 안정도 도모할 수 없다.
재건축 규제 완화는 정부 재정 낭비 없이 시장의 힘을 활용해 주거난을 해소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쉬운 길을 놔두고 굳이 먼 길로 돌아가려 하는지 모르겠다.
양도소득세 한시적 완화로 다주택자 퇴로를 열어주는 조치도 필요하다. 다주택자 양도세 완화는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의 말마따나 “빵처럼 찍어낼 수 없는 집”을 단기에 공급할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설 연휴 이전에 나올 주택 공급 대책이 변죽만 울리는 ‘맹탕 대책’이 되질 않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