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4년 차를 맞은 40대 젊은 오너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기존 LG 스타일을 싹 갈아엎으며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선대 회장들이 뚝심으로 지속적인 투자를 이어갔다면, 구광모 회장은 실용주의에 입각해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가치가 떨어진 사업부를 매각하고, 해외의 유망기업을 인수하는 데도 집중하고 있다.
또 그룹의 보수적인 문화를 깨기 위해 출신을 불문한 외부인사도 적극적으로 영입한다. 안정과 화합을 강조했던 것과 달리, ‘싸울 것은 싸운다’는 신념으로 소송전도 거침없다. SK 이노베이션을 ‘기술 유출’ 혐의로 국제 소송을 제기한 게 대표적인 예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LG전자가 ‘아픈 손가락’ 스마트폰 사업에 대한 전면 재검토에 나선 건 구광모 회장의 ‘선택과 집중’ 전략 일환으로 알려졌다.
전날 LG전자는 만성적자에 시달리던 스마트폰 사업에 대해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시장에서는 고용 유지를 전제로 한 사실상 '매각이나 철수' 선언으로 풀이한다.
LG그룹이 휴대폰 사업을 시작한 것은 1995년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 ‘초콜릿폰’과 ‘샤인폰’ 등이 대박을 터뜨리며 승승장구했지만, 스마트폰 적기 대응에 실패하며 조 단위 적자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화를 추구하는 LG가(家) 경영 스타일상 파격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LG전자는 평택 스마트폰 공장을 철수시켰고, 이번에는 사업 전면 재검에 나서는 굵직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앞서 구 회장은 지난 2019년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LG의 미래를 “전자-화학-통신 3대 축으로 준비하겠다”라고 약속하며 변화를 예고했다. 이후 비핵심 분야를 과감하게 정리했다. 연료전지, 수처리, LCD 편광판, 전자결제 등이 매각을 단행한 대표적인 사업이다.
반대로 자동차 부품,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전기차 배터리, AI(인공지능), 로봇 등 확실한 미래 성장 동력에는 과감한 투자와 인수합병(M&A)에 나섰다.
지난해 말 세계 3위 자동차 부품업체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전기차 파워트레인 분야 합작법인 설립을 발표했고, 불과 일주일 후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TV 광고·콘텐츠 데이터 분석 스타트업 알폰소를 인수했다.
구 회장은 오픈 이노베이션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에서는 ‘LG사이언스파크’를 중심축으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협력하는 동시에 해외에서는 ‘LG테크놀로지벤처스’를 통해 글로벌 유망 스타트업에 발 빠르게 투자하고 있다.
구 회장은 “기업 내외부의 아이디어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가치를 창출하는 개방적 혁신을 위해서 우수한 기술을 보유한 국내외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발굴을 강화해달라”고 언급한 바 있다.
순혈주의를 깨고, 외부 인재 영입에도 적극적이다. 취임 첫해인 2018년 연말 인사와 조직 개편에서 3M 신학철 수석부회장에 러브콜을 보내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영입했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 말에는 AI 전담 조직인 ‘LG AI연구원(LG AI Research)’을 출범하고, 세계적 AI 석학이자 구글의 AI 연구 조직 ‘구글브레인’ 출신 이홍락 미국 미시간대 교수를 영입했다.
이 밖에 윤형봉 티맥스소프트 글로벌사업 부문 사장이 LG CNS 최고전략책임자로, 허성우 롯데BP화학 대표가 LG화학 석유화학사업본부 글로벌사업추진담당으로 영입된 것도 대표적인 사례다.
재계 관계자는 “구 회장은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스타트업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글로벌한 감각을 갖췄다”며 “개방적인 스타일에다 과감한 추진력까지 보여주며, 그룹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