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 이어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 실패를 인정했다. 문 대통령은 공공 주도 개발 등 대규모 공급 대책도 예고했다.
문 대통령은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투기 방지에 역점을 뒀으나 결국 부동산시장 안정화에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부동산 정책 실패를 인정한 건 “주거 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이 큰 국민들께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고 한 11일 신년사 발표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문 대통령은 “과거 정부에 비해서 보다 많은 주택 공급을 늘렸다”면서도 부동산 정책이 효과를 못 낸 요인으로 늘어난 유동성과 세대 수 급증 등 두 가지를 꼽았다. 저금리 기조와 확대 재정으로 시장에 돈이 많이 풀린 데다 1·2인 가구가 정부 예상보다 빠르게 늘면서 주택이 부족해졌다는 것이다.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주민등록인구는 2만 명 넘게 줄었지만 세대 수는 61만 세대 늘었다.
전문가들은 아직 정부·여당이 주택난 본질을 보지 못한다고 우려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세대 수 증가는 이미 장기적인 현상이었다”며 “지난해 세대 수가 급증한 건 임대차 3법(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상한제·전월세신고제) 개정으로 가구 분리가 늘어난 영향”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간 주택 공급이 충분하다고 말하다 공급 부족을 인정하는 건 일관성이 없다”고도 꼬집었다.
문 대통령은 이 같은 난국을 타개할 방안으로 “공공부문의 참여를 늘려 '공공재개발'(공공참여형 재개발)과 역세권 개발, 신규택지의 과감한 개발을 통해 시장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으로 주택 물량을 늘리겠다”며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설 전에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관계 부처에선 역세권 개발과 저층 주거지 소규모 재건축 활성화를 염두에 두고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철도 부지 등 새로 주택을 공급할 택지 후보 물색도 한창이다. 이미 진행 중인 공공 재개발·재건축 사업, 준공업지역 순환 정비사업 등도 지금보다 확대할 계획이다. 변 장관은 평소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 참여와 용적률 등 규제 완화를 통해 서울 도심을 고밀 개발해야 한다는 지론을 펴왔다.
공공 주도 주택 공급을 두고 시장에선 기대와 냉소가 엇갈린다. 사업성이 부족해 개발이 지체됐던 지역에 주택을 공급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재건축 등 민간 정비사업을 선호하는 시장 수요와는 거리가 있어서다. 개발 부진 지역을 대상으로 한 공공재개발 사업은 흥행한 반면 '공공재건축'(공공 참여형 고밀 재건축)은 수익성을 중요시하는 재건축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는 게 그 방증이다. 심교언 교수는 “대규모 공공 주도 개발을 하면 주택 공급은 할 수 있겠지만 시장에서 원하는 민간 수준의 좋은 주택을 얼마나 지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정책 발표부터 분양, 입주에 이르기까지 시차가 5년 이상 걸린다는 점도 문제다. 대규모 공급 정책이 나와도 당면한 주택난을 해결하기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실제 지난해 말 변 장관은 취임 이후 공급 확대 기조를 꾸준히 밝히고 있지만, 전국 집값은 상승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기존 투기 억제 정책 유지 방침
문 대통령은 “기존의 투기를 억제하는 (정책)기조는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세제 강화 등 다주택자를 겨냥한 수요 억제책이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차관보도 이날 열린 부동산 정책 합동설명회에서 “앞으로도 공정 과세 실현 및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해 기(旣) 마련한 세제 강화 등 정책 패키지를 엄정하게 집행하고 관련 조세제도를 면밀히 검토해 나가겠다”고 했다. 부동산시장에선 이 같은 기조가 지난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발언으로 불거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완화설(說)을 해소하려는 것으로 해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