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차’가 위기의 계곡에 빠졌다. 저렴한 가격과 유지비를 앞세워 전성기를 누리던 경차는 12년 만에 10만 대 판매가 무너졌다. 10년 만에 판매량이 반 토막 나며 시장에서 점차 존재감을 잃고 있다.
17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와 완성차 5사 등에 따르면 지난해 판매된 경차는 9만6231대에 그쳤다. 연간 경차 판매량이 10만 대 아래로 내려간 건 2008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완성차 5사의 내수 판매가 전년보다 4.8% 증가한 와중에도 경차 판매량만큼은 14% 급감했다.
경차는 배기량이 1000㏄ 미만인 엔진을 얹고 길이(전장)와 너비(전폭)가 각각 3.6m x 1.6m, 높이(전고)가 2m 이하인 자동차를 말한다. 엔진 출력에 관한 제한은 없다. 애초 800cc로 제한했던 엔진 배기량은 2008년 개정된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상향 조정됐다.
저렴한 가격과 뛰어난 연비, 정부의 세제 혜택 덕에 경차는 한때 전체 신차 판매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마이카(my car)’ 시대가 정착하는 데 기여한 공도 크다.
우리나라 경차의 역사는 1991년 ‘티코’의 탄생과 함께 시작됐다. 당시 대우조선공업(현 대우조선해양)은 소형차를 전문적으로 생산할 대우국민차를 설립한 뒤 창원공장에서 티코를 만들었다. '작은 차, 큰 기쁨'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티코는 사회 초년생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출시 첫해에만 3만 대가 넘게 판매됐고,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해서는 월 1만 대 이상 팔리기도 했다.
티코의 인기가 계속되자 현대차는 1997년 아토스를 내놓았고, 대우차는 티코의 후속으로 마티즈를 선보이며 맞대응에 나섰다. 이후 기아 비스토, 모닝, 레이와 한국지엠 스파크 등이 연이어 출시되며 경차 시장은 전성기를 맞았다.
2000년대 후반만 해도 매년 15만 대 안팎의 경차가 판매됐고, 2012년에는 연간 판매량이 20만대를 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차의 질주는 여기까지였다. 2014년 이후 경차 판매량은 △2015년 17만3418대 △2017년 13만8204대 △2019년 11만3708대 등 급격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경차는 기아 레이와 모닝, 한국지엠(GM) 스파크 세 종류다. 한국지엠이 생산하는 경상용차 다마스와 라보는 내달 중 단종돼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경차 판매량이 급감한 데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했다. 경차와 관련한 낡은 제도가 바뀌지 않으며 소비자를 유인할 새로운 모델이 탄생하지 못했다. 시민들의 소득수준이 높아졌고, SUV와 중형 세단을 선호하는 경향이 갈수록 확대된 점도 한몫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