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은 지난달 30일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에서 “책임지고 준법을 넘어 최고 수준의 투명성과 도덕성을 갖춘 회사를 만들겠다”는 점을 국민에게 다시 한 번 약속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대국민 사과에서도 ‘4세 경영 포기’, ‘무노조 경영 포기’ 등을 선언했고 삼성은 그 과정을 하나씩 이행하고 있다.
김지형 삼성준법감시위원장 역시 지난해 송년사에서 “삼성의 변화를 향한 걸음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선언하며 “삼성의 윤리경영, 준법경영이 안착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삼성이 선언한 내용은 그간 삼성그룹 차원에서 금기시했던 내용들이 많아 그 자체로 파격이었고 또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삼성에 국민이 요구하는 눈높이는 국내 어떤 기업보다도 높다. 이유는 삼성그룹이 한국경제를 대표하는 기업을 넘어 이미 세계적 수준의 초일류 기업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전문지에서도 삼성은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전략 및 혁신, 조직문화를 비교당한다. 글로벌 혁신기업들과 매출 경쟁이 아닌 사회적 가치 창출에도 앞장서야 하는 과제를 2021년의 삼성은 안고 있다.
삼성은 국내 취업준비생에게 입사하고 싶은 기업 1위의 자리를 10년 넘게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에 있는 유능한 글로벌 인재들에게 삼성그룹, 삼성전자는 현실적으로 그리 매력적인 기업은 아니다. 업계에서 최대의 이익을 창출하고 있지만 최고의 자율성과 유연성, 투명성을 보이는 기업이라고 평하기엔 아직 물음표가 따르기 때문이다.
고 이건희 회장은 양적 성장의 방향을 질적 성장으로 바꿔놓았다. 제품의 품질에 중점을 둔 질적 성장과 인재를 중시하는 천재경영으로 삼성그룹을 일약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변화시킨 공로가 있다. 서구의 그 어떤 기업과 비교해도 삼성그룹은 매출, 이익 부분에서 그 어디에도 밀리지 않는다. 경영자로서 대단한 성과임엔 틀림없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제 한발 더 나아가 정량적 관점의 질적 성장에서 정성적 관점의 품격 있는 기업으로 삼성을 변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 부회장과 김 위원장이 약속했듯이 최고 수준의 투명성을 갖춘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린다 힐 교수는 조직문화의 변화와 혁신을 위해서는 최소 5~10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강조했다. 단기적 성과가 아닌 장기적 차원의 탈바꿈을 위한 삼성의 헌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삼성을 비판하는 이들도 당연히 삼성의 초격차 성장을 희망한다. 관리의 삼성에서 혁신의 삼성, 수직적 구조의 관료제에서 자율성과 창의성을 갖춘 조직으로 변화한다면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각지의 인재들이 삼성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삼성이 구글, 애플, 아마존과의 혁신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방법은 오직 하나. 조직문화를 훨씬 더 유연하게 개선하고 도덕성과 투명성을 갖춘 기업이 되어야 한다. 이는 모두의 바람이기도 하다.
다수의 경영학 학술지에서 실증 분석한 결과 전략이 뛰어난 기업은 5년 이상 성장하기 힘들지만 조직문화가 투명성을 지향하고 경영자의 윤리의식이 높은 기업들은 10년 이상 장기 성장을 거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역량이 뛰어난 인재일수록 기업의 정량적 이익보다 정성적 부분인 브랜드, 품격을 중시해서 희망 기업을 선택하고 있다.
기업의 성장과 몰락은 전략이 아닌 조직문화와 경영자의 도덕성에서 판가름 난다고 경영 분야의 석학들이 주장하는 이유이다. 신뢰도가 가장 높은 기업이 경쟁력도 가장 높다는 것이 현대 기업 경쟁의 패러다임이다. 새해, 삼성이 품격 있는 기업으로의 변화를 위해 약속한 다짐을 하나하나 실천한다면 삼성의 미래 경쟁력은 자연스럽게 뒤따라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