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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유난히 안톤 체홉(Anton Chekhov, 이하 체홉)의 작품을 극장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는 '바냐아저씨', '비련의 여인을 사랑한 스파이', '체홉의 네바' 등의 해외공연들이 초청됐으며,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에서도 러시아 말리극장의 '세자매'가 초청되어 '체홉'의 정통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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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중 최근 공연된 체홉의 작품 중 가장 독특하면서도 논란을 일으킬만한 것을 꼽으라면 과연 어떤 작품일까?
이 작품은 체홉을 단순히 보여주고 해석하는 수준을 넘어, 체홉을 비틀고, 넘어뜨리고, 흔들어 버리려고 하는 '전복의 체홉'이었다.
무대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20세기 사실주의 연극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체홉의 갈매기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마치 어린 아이들이 크레파스로 마구잡이로 낙서를 해댄 듯한 장난기 가득한 무대였다.
배우들의 의상 역시 마찬가지. 어머니를 사랑하고, 또 연극을 사랑하는 소심한 청년인 트레플례프는 하얀 우의에 주황색 구두와 모자, 선글라스로 젊은 예술가의 도전성을 드러냈으며, 너무나 젊고 수수해 보여 발랄하기까지 해 보이는 니나는 미니스커트를 입으며 도발성을 극에 달하게 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매력적이고 자신의 삶, 사랑 앞에서는 이기적이기까지 한 아르까지나는 가지각색의 가발로 무대를 컬러풀하게 장식하기도 했다.
이 작품의 특성인 '비판적 리얼리즘'이니, '2010년 체홉 탄생 150주년'과 같은 기념적비적인 의미는 이미 휴지통에 버려져 있었다.
연극은 철저히 체홉의 희곡, 사유 등을 철저히 해체하고 전복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당연히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유리 부투소프가 자리 잡고 있다. 또 그의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 가장 논란의 여지를 남길 것으로 보인다.
유리 부투소프는 지난 2003년 같은 토월극장에서 '보이체크'를 공연해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리쉬한 연출력을 뽐낸 바 있다.
여기서 유리 부투소프가 연출한 '갈매기'가 좋았느냐 안좋았느냐로 단순하게 칼질을 하기는 무리가 따른다.
왜냐하면, 그는 연출가로서 충분히 100년 이상 된 작품을 동시대로 끌어올릴 소명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4년 전 같은 무대에서 올려진 지차트콥스키의 '갈매기'를 본 관객이라면, 또 그것을 기대하고 그때의 감동을 다시 한번 맛보고 싶어 이번 작품을 본 관객이라면, 적잖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며, 또 불쾌한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공연의 기획 자체가 4년 전 공연된 작품이 '예술의전당 개관 20주년 기념 최고의 연극 시리즈'로 선정된, 재공연성이 강한 공연으로 기획됐기 때문이다.
극중 트레플레프는 연극을 준비하며 항상 '새로운 형식'을 외쳤다. 당시만 해도 어머니의 비웃음을 샀지만, 세월이 지나 그의 작품은 다시금 주목을 받아 유명작가가 된다.
유리 부투소프의 이번 연출 역시 트레플레프가 말한 '새로운 형식'이 아니었을까 감히 추측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