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고 넘어뜨리는 '전복의 체홉'

입력 2008-12-15 17:1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예술의 전당 개관 20주년 기념 '갈매기'

#전문

지난 가을, 유난히 안톤 체홉(Anton Chekhov, 이하 체홉)의 작품을 극장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는 '바냐아저씨', '비련의 여인을 사랑한 스파이', '체홉의 네바' 등의 해외공연들이 초청됐으며,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에서도 러시아 말리극장의 '세자매'가 초청되어 '체홉'의 정통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본문

한 편에서는 '체홉의 편식 현상'이니 '체홉의 쏠림 현상' 등의 표현을 쓰며 냉소적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했지만, 어쩌면 이 같은 현상은 체홉의 작품만큼 시대와 역사를 관통하는 동시대성과 해석의 다양함을 제공하는 작품도 없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그중 최근 공연된 체홉의 작품 중 가장 독특하면서도 논란을 일으킬만한 것을 꼽으라면 과연 어떤 작품일까?

필자는 단연코 '예술의전당 개관 20주년 기념 최고연극 시리즈'(11월7일~23일,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로 공연된 '갈매기(The Seagull)'라고 꼽고 싶다.

이 작품은 체홉을 단순히 보여주고 해석하는 수준을 넘어, 체홉을 비틀고, 넘어뜨리고, 흔들어 버리려고 하는 '전복의 체홉'이었다.

무대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20세기 사실주의 연극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체홉의 갈매기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마치 어린 아이들이 크레파스로 마구잡이로 낙서를 해댄 듯한 장난기 가득한 무대였다.

배우들의 의상 역시 마찬가지. 어머니를 사랑하고, 또 연극을 사랑하는 소심한 청년인 트레플례프는 하얀 우의에 주황색 구두와 모자, 선글라스로 젊은 예술가의 도전성을 드러냈으며, 너무나 젊고 수수해 보여 발랄하기까지 해 보이는 니나는 미니스커트를 입으며 도발성을 극에 달하게 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매력적이고 자신의 삶, 사랑 앞에서는 이기적이기까지 한 아르까지나는 가지각색의 가발로 무대를 컬러풀하게 장식하기도 했다.

이 작품의 특성인 '비판적 리얼리즘'이니, '2010년 체홉 탄생 150주년'과 같은 기념적비적인 의미는 이미 휴지통에 버려져 있었다.

연극은 철저히 체홉의 희곡, 사유 등을 철저히 해체하고 전복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당연히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유리 부투소프가 자리 잡고 있다. 또 그의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 가장 논란의 여지를 남길 것으로 보인다.

유리 부투소프는 작품이 가진 은근한 매력을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의 연출력은 즉물적이며 감각적이다.

유리 부투소프는 지난 2003년 같은 토월극장에서 '보이체크'를 공연해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리쉬한 연출력을 뽐낸 바 있다.

여기서 유리 부투소프가 연출한 '갈매기'가 좋았느냐 안좋았느냐로 단순하게 칼질을 하기는 무리가 따른다.

왜냐하면, 그는 연출가로서 충분히 100년 이상 된 작품을 동시대로 끌어올릴 소명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4년 전 같은 무대에서 올려진 지차트콥스키의 '갈매기'를 본 관객이라면, 또 그것을 기대하고 그때의 감동을 다시 한번 맛보고 싶어 이번 작품을 본 관객이라면, 적잖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며, 또 불쾌한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공연의 기획 자체가 4년 전 공연된 작품이 '예술의전당 개관 20주년 기념 최고의 연극 시리즈'로 선정된, 재공연성이 강한 공연으로 기획됐기 때문이다.

극중 트레플레프는 연극을 준비하며 항상 '새로운 형식'을 외쳤다. 당시만 해도 어머니의 비웃음을 샀지만, 세월이 지나 그의 작품은 다시금 주목을 받아 유명작가가 된다.

유리 부투소프의 이번 연출 역시 트레플레프가 말한 '새로운 형식'이 아니었을까 감히 추측해 본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어떤 주담대 상품 금리가 가장 낮을까? ‘금융상품 한눈에’로 손쉽게 확인하자 [경제한줌]
  • 2025 수능 시험장 입실 전 체크리스트 [그래픽 스토리]
  • "최강야구 그 노래가 애니 OST?"…'어메이징 디지털 서커스'를 아시나요? [이슈크래커]
  • 삼성전자, 4년 5개월 만 최저가...‘5만 전자’ 위태
  • 고려아연, 유상증자 자진 철회…"신뢰 회복 위한 최선의 방안"
  • 재건축 추진만 28년째… 은마는 언제 달릴 수 있나
  • 법원, 이재명 ‘공직선거법 1심’ 선고 생중계 불허…“관련 법익 종합적 고려”
  • ‘음주 뺑소니’ 김호중 1심 징역 2년 6개월…“죄질 불량·무책임”
  • 오늘의 상승종목

  • 11.13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30,029,000
    • +5.56%
    • 이더리움
    • 4,643,000
    • +0.19%
    • 비트코인 캐시
    • 617,500
    • +1.15%
    • 리플
    • 1,001
    • +4.05%
    • 솔라나
    • 303,600
    • +1.57%
    • 에이다
    • 835
    • +2.96%
    • 이오스
    • 789
    • +1.28%
    • 트론
    • 255
    • +0.39%
    • 스텔라루멘
    • 185
    • +6.94%
    • 비트코인에스브이
    • 83,300
    • +1.77%
    • 체인링크
    • 20,020
    • +1.11%
    • 샌드박스
    • 421
    • +2.43%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