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10명 중 8명이 유연근로제 확대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업무성과와 근로시간이 비례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근로시간을 엄격히 규제하면 오히려 업무 효율성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다.
23일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최근 직장인 300명을 대상으로 벌인 ‘근로시간에 대한 직장인 인식 조사’ 결과 ‘유연근로제를 지금보다 더 확대할 필요가 있는지’라는 질문에 직장인의 81.3%가 ‘필요하다’라고 답해 ‘필요 없다’(18.7%)라는 응답을 크게 웃돌았다.
직장인들이 유연근로제 확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주된 이유는 ‘업무시간과 성과가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본인의 일하는 시간과 업무성과가 비례하는 편인지’ 묻는 말에 응답자의 54.4%가 ‘비례하지 않는 편’이라고 답했다. ‘매우 비례’하거나 ‘상당히 비례’한다는 답변은 45.6%였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근로시간과 성과가 비례하지 않는데 근로시간만 엄격히 규제하면 비효율이 생길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한상의가 직장인들에게 엄격한 근로시간 관리로 업무에 불편함을 겪은 적이 있는지를 묻자 62%가 ‘있다’라고 응답했다.
구체적인 불편사항으로는 ‘긴급업무 발생 시 대응 곤란’이라는 응답이 42.8%로 가장 많았고, ‘집중근무 어려움’(33.9%), ‘경직된 출퇴근 시간 등으로 생활불편 초래’(22.8%) 등이 뒤를 이었다.
중견 IT업체 A 과장은 “고객사 요청으로 업무가 한꺼번에 몰릴 때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업무 집중도가 높은 날에는 일을 다 끝내놓고 싶은 때도 있다”며 “이런 날에도 회사에서 퇴근 시간 됐다고 퇴근을 독촉하면 난감하다”라고 토로했다. 개인의 업무 내용과 상황에 맞게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어야 업무 효율성 역시 올라간다는 것이다.
직장인들은 ‘선택근로제’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선택근로제는 일정한 정산 기간 내에서 어떤 주에는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해 일하고, 다른 주에는 초과한 시간만큼 더 쉴 수 있는 제도다.
국회가 9일 연구개발(R&D) 업무에 한해 선택근로제 정산 기간을 1개월에서 3개월로 확대했지만, 직장인의 76.3%는 R&D 외 직무에도 정산 기간 확대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또,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선택근로제 정산 기간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금융사 B 과장의 경우 “업무가 많은 날도 있지만, 업무가 적은 날에는 퇴근 시간까지 그냥 앉아 있는 때도 있다”라고 언급하며 “정산 기간이 확대되면 그런 자투리 시간을 모아서 여름에 한 달 정도 휴가를 쓰고 싶다”라는 희망을 말했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Collar Exemption)' 제도의 도입 필요성에 대해서도 많은 직장인이 공감했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은 근로시간 관리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고소득 관리직 등에 대해 근로시간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제도로 미국, 일본 등에서 활용 중이다.
‘국내에도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는지’라는 물음에 조사대상의 87.5%가 ‘도입이 필요하다’라고 응답했다. 절대다수의 직장인이 고소득 직장인에게는 근로시간 규제를 적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의미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제도를 도입할 경우 ‘고소득의 기준은 얼마 이상이 적당할지’에 대한 질문에는 평균 7950만 원으로 답했다. 현재 미국은 10만7000달러(1억2000만 원), 일본은 1075만 엔(1억2000만 원) 이상의 고소득 근로자에게 적용되고 있다.
한편 직장인들은 주 52시간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 52시간에 대한 만족도’에 대한 질문에 조사 대상의 58.0%가 ‘만족한다’라고 응답했다. 반면 ‘불만’이라는 응답은 11.3%였으며, ‘중립적’이라는 응답도 30.7%나 됐다.
직장인이 주 52시간제에 만족하는 이유는 ‘근무시간 감소’가 65.8%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어 ‘불필요한 업무 감소’(18.4%)나 ‘업무 집중도 증가’(11.4%)도 만족하는 이유로 꼽혔다.
반면 불만이라는 이유로는 ‘소득 감소’(37.0%)가 가장 많았고, ‘업무효율 저해’(29.6%)와 ‘업무부담 가중’(22.2%)을 답한 직장인도 다수였다.
전인식 대한상의 고용노동정책팀장은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연구소나 사무실에서 혁신이 쏟아져야 하는데, 주 52시간제가 획일적인 규제로 작동해서는 곤란하다”라면서 “주 52시간 시대에 맞게 장시간 근로는 방지하되, 이제는 인재들이 일할 때 맘껏 일하고 쉴 때 충분히 쉴 수 있도록 유연근로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