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소수 고세율 구간 실제 세수 확보엔 큰 도움 안돼
내년이면 소득세 최고세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소득세율(43.3%)을 넘어서게 된다. 서민층의 조세저항을 우려한 정부가 그동안 손쉬운 ‘부자증세’에만 몰두한 결과다.
소득세율 인상을 문재인 정부만의 특징으로 보긴 어렵다. 지난 8년간 오른 최고세율만 10%포인트(P)에 달한다. 이명박 정부는 2012년(이하 소득세법 개정 연도) 최고세율을 35%에서 38%로 3%P 올리고, 해당 세율을 적용하는 과세표준 구간(3억 원 초과)을 신설했다. 박근혜 정부에선 2013년 최고세율 적용 과표 구간을 기존 3억 원 초과에서 1억5000만 원 초과로 낮췄다. 2016년에는 최고세율을 38%에서 40%로 인상(과표 5억 원 초과)했다.
문재인 정부는 두 차례 소득세율 인상을 단행했다. 2017년 최고세율을 40%에서 42%로 높이고, 올해 다시 45%로 인상했다. 45% 세율은 내년부터 과표 10억 원 초과 소득에 적용된다.
기획재정부 추산 45%의 소득세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국민은 약 1만6000명(소득 상위 0.05%)으로 이들이 연간 약 9000억 원의 소득세를 추가로 부담한다. 보수와 진보 성향 정권이 번갈아 가며 들어섰던 최근 10년간 정권을 잡은 진영은 조세저항이 두려워 이처럼 손쉬운 과세인 ‘부자증세’를 추진했다.
◇부자증세 세수에는 도움 안 돼 = 최고세율 인상으로 한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와 함께 ‘30·50클럽(국민소득 3만 달러·인구 5000만 명 이상)’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30·50클럽 국가 중 미국(37%), 이탈리아(43%)보다 높고, OECD 회원국 중에선 호주와 같은 수준이다.
한국의 소득세율 인상은 다른 선진국의 소득세율 인상과 상황이 다르다. 최고세율이 높고, 고세율이 적용되는 과표 구간이 높다. 증세로 고소득층의 세부담이 늘지만, 실제 세수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달리 표현하면 정치적·상징적 목적의 증세다.
벨기에의 경우 최고세율(50%)이 적용되는 구간이 원화 기준으로 약 5618만 원이다. 우리와 최고세율이 같은 호주는 1억5387만 원이다. 최고세율이 높은 선진국들은 대체로 고세율을 적용받는 소득계층이 넓게 분포돼 있다. 과세 형평성이 비교적 높다는 의미다. 한국은 임금근로자의 절반가량이 낮은 세율, 근로소득공제, 각종 비과세·감면으로 사실상 소득세를 내지 않는다. 따라서 최고세율 인상에 따른 세부담 증가는 일부 초고소득자에게 집중된다.
◇사라진 ‘보편적 증세’= 한국의 소득세는 유독 보편성이 약하다. 국내 세수에서 비중이 큰 세목은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 세 가지다. 이 중 법인세는 국제조세 측면이 있는 데다 명목세율과 실효세율의 편차가 커 기업 매출 구간별 직접비교가 어렵다. 부가세는 상품 거래가격에 적용되는 간접세로, 소득수준과 무관하게 1977년 이후 40년 가까이 10% 단일세율이 적용되고 있다. OECD 평균(약 18%)과 비교해선 세율이 낮지만, 역진성 탓에 증세가 어렵다.
남은 건 소득세다. 소득이 있는 모든 국민에게 납세의무가 부과돼 보편적 증세 시 조세조항이 강하다. 이로 인해 역대 정부는 대체로 소득세를 선거 등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해왔다. 부자·서민의 대결구도를 만들고, 부자에게 세부담을 전가함으로써 절대다수인 서민층의 지지를 얻는 식이었다. 그 결과 지난 8년간 소득세는 세수효과 없이 최고세율만 10%P 올랐다. 최고세율 45%를 적용받는 대상은 지난해 소득자료 기준으로 1만6000여 명에 불과하다.
익명을 요구한 세제 전문가는 “조세저항이 크고 상대적으로 유권자 수가 많은 중산층의 세금 감면을 유지하는 것은 포퓰리즘적 조세정책”이라며 “근로소득세 면세자 수를 줄여 국민개세주의 원칙을 실현하고 납세자 간 형평성을 높이는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의 조세 기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