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트럭부터 세탁소, 꽃집, 퀵 서비스까지. 소상공인을 상징하던 자동차 다마스와 라보가 내년 초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간 수차례 단종 위기를 겪으면서도 생산을 이어왔지만, 이번만큼은 단종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29일 다마스와 라보를 생산하는 한국지엠(GM)에 따르면, 두 차종은 내년 2월을 전후해 생산이 종료된다. 한국지엠이 생산 수익성과 신차 생산 계획을 고려해 단종을 결정하면서다.
국내 유일의 경상용차인 다마스와 라보는 옛 대우국민차가 1991년 생산을 시작한 뒤 30년간 국내에서 37만대 이상 판매되며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꾸준한 선택을 받아왔다.
실용적인 적재공간과 경제성이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다마스와 라보는 가격이 800만 원대부터 시작할 뿐 아니라 개별소비세와 취·등록세 면제, 공영주차장 요금ㆍ고속도로 통행료 할인 등 각종 혜택이 주어져 유지 비용이 적다. LPG 엔진을 얹어 연료비도 저렴하다.
기동성과 적재능력도 인기에 한몫했다. 다마스는 차체의 너비(전폭)가 1400㎜에 불과해 좁은 골목길도 주행할 수 있다. 신형 쏘나타(1860㎜)보다 차체가 46㎝나 더 좁다. 반면, 높이(전고)는 1920㎜에 달해 화물을 싣고 나르기에 수월하다.
꾸준한 수요에도 불구하고 다마스와 라보는 과거 세 차례나 단종 위기를 겪었다.
한국지엠은 2007년에 두 차종의 생산을 처음으로 중단했다. 정부의 배출가스 기준이 강화되면서다. 당시 한국지엠은 200억 원의 추가 투자를 통해 기준을 만족하는 엔진을 얹어 이듬해부터 생산을 재개했다.
2013년 말에는 환경ㆍ안전 규제가 강화되며 다시 단종을 경험했다. 당시 강화된 규제를 충족하려면 배출가스 자가진단장치(OBD), 에어백, 헤드레스트, TPMS(타이어 공기압 경고 장치) 등을 새로 갖춰야 했다. 다마스와 라보에 해당 기능을 추가하려면 수백억 원의 비용이 필요했는데, 수익성이 높지 않은 두 차종에 많은 투자를 할 여력이 없던 한국지엠은 결국 생산을 포기했다.
그러자 주요 소비층인 소상공인 업계가 정부에 단종을 막아달라는 청원을 제출했다. 이에 정부는 일부 안전 규제 적용을 5년간 유예해줬고, 한국지엠은 2014년 다마스와 라보를 다시 생산하기 시작했다.
필수적인 안전장치 장착을 유예한 탓에 생산은 2019년 말로 끝날 예정이었지만, 정부는 2021년까지 한 차례 더 유예기간을 연장했다. 소상공인의 수요가 여전히 많고, 단종 시 일자리 감소와 부품업계의 위기가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과거 사례 탓에 일각에서는 다마스와 라보의 생산이 재차 연장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한국지엠은 이번엔 과거와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다마스와 라보를 생산하는 창원공장을 개조해 차세대 신차를 만들어야 해서다.
한국지엠은 2022년부터 차세대 CUV(크로스오버 유틸리티 차량)를 창원공장에서 생산할 예정이다. 내년 1분기에는 두 차종을 단종해야 신차 생산을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할 수 있다.
소상공인 업계 쪽에서도 과거와 달리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유지비가 저렴한 다마스와 라보의 단종이 아쉽긴 하지만, 과거처럼 단체 차원의 입장을 낼 계획은 없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정치권의 반발이라는 변수가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다마스와 라보는 판매량이 점차 줄고 있고, 차세대 신차 생산도 예정돼 있어 단종 수순을 밟을 것"이라면서도 "선거 등과 맞물리며 정치권이 이슈를 제기하면 과거처럼 결정이 번복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지엠은 다마스와 라보에 할부, 유류비 지원 등의 구매 혜택을 제공하며 막바지 판매 확대에 나서고 있다. 생산 종료 이후에도 기존 구매 고객의 불편이 없도록 대응을 이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