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통상관계가 진척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위기 상황으로 양국 관계 개선의 여지가 생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통상 전문가들은 민간 교류 활성화, 기업 간 출입국 제한 완화 등에 나서며 한일 관계 개선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법무법인 율촌과 공동으로 26일 ‘제6회 대한상의 통상 포럼’을 개최하고 스가 집권기에서의 한일 통상관계 전망과 대응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정부, 학계, 업계, 연구기관 등에서 전문가 13명이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서 발제자로 나선 법무법인 율촌 정동수 고문은 한일 통상관계에 대해 “지난 9월 부임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실용주의자로서 한일 경제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스가 정부는 대(對)한국 수출규제 강도를 높이기보다는 당분간 현재 상황을 유지·관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도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 성공적인 도쿄올림픽 개최 등 해결해야할 과제를 안고 있다”며 “이를 위해서 일본도 한일관계 개선을 원하고 있어 양국관계 개선의 여지가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정 고문은 “스가 정부도 한일관계를 징용공 배상문제, 일본 정부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문제 해결 등과 결부시키고 있어 단기간에 양국이 타협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만약 2차 대한국 수출규제가 감행된다면 첨단소재, 소재가공, 센서 등 상대적 비민감 전략물자 또는 대일본 수입의존도가 높은 반도체 및 평판디스플레이 제조 장비, 정밀화학원료와 같은 기초소재가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자리에서는 여전히 우리나라와 일본 간의 소재·부품 산업의 격차는 존재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본 제조업은 갈라파고스화 현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대(對)일본 무역역조는 계속되고 있으며 대일 무역수지 적자 60% 이상은 소재·부품에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갈라파고스화 현상은 일본이 국내 소비자의 수요에 대응하여 과잉기술, 과잉품질 추구에 따른 결과로 가격경쟁력 저하로 인한 세계시장 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진 현상을 뜻한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7월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3대 품목에 대해 대한국 수출 시 기존 포괄허가(3년간 유효)에서 개별허가로 전환하는 규제조치를 시행한 지 1년 5개월이 지났다”며 “그동안 수출규제 3대 품목 중 불화수소를 제외하면 대일본 수입의존도는 여전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지적했다.
대일 수입의존도는 작년 1월부터 6월까지 △포토레지스트 92.3% △불화수소 44.6%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93.0%였으나, 올해 10월 기준 △포토레지스트 82.5% △불화수소 12.4%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94.8%를 기록했다.
대한상의 통상포럼 참석자들은 새롭게 출범한 스가 정부는 실용적이고 안정적 대외관계를 지향하는 점에서 그동안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던 한일관계도 전환의 계기를 맞을 수 있다는 데 공감했다.
스가 정부도 아베 정부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먼저 일본의 요구를 수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타협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변수가 많다는 의견도 많았지만, 일본도 한국 관광객 급감, 일본 부품·소재 기업의 대한국 수출 타격 등 역풍을 맞고 있어 관계개선의 목소리가 높아 지금이 양국관계 개선 적기라는 주장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한일 통상관계 개선방안으로 △관광객 등 민간 교류 활성화 △한일 기업인 간 출입국 제한 완화 △정치권의 비공식적 협의와 우호적 분위기 조성 등이 제시됐다.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한일 통상관계가 1년 반 가까이 경직되면서 불확실성에 따른 우리 기업의 경영 애로도 그만큼 가중돼왔다”면서 “한국과 일본 공동 번영의 가치 추구를 목표로 양국 정부가 전향적 태도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