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인구 대비 5배 많은 물량 확보
남미·동남아는 중국과 러시아 백신으로 눈 돌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확보를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고소득 국가를 중심으로 각국이 물량 확보에 사활을 걸면서 백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3일(현지시간) BBC방송에 따르면 노스캐롤라이나 듀크대 조사 결과 전 세계적으로 각국 정부가 계약한 백신 용량은 64억 회분이다. 일반적으로 1인당 2회 접종하는 방식임을 고려하면 32억 명이 접종받을 수 있는 분량이다. 여기에 더해 28억 회분은 거래 협상 중이거나 추가 계약이 걸려있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전 세계 인구의 60%가량이 접종받을 수 있는 물량이지만, 배분이 고르지 않아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유럽연합(EU)과 미국, 일본, 영국, 이스라엘, 홍콩, 스위스, 뉴질랜드 등 8개 국가는 전체 92억 회분 중 37억 회분을 확보했다. 반면 백신 공동 구매와 배분을 위한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퍼실리티는 7억 회분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가 맺은 거래는 한 건도 없었다. 저소득 국가 대부분이 코백스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불균등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백신을 확보한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이 확실하게 구매 계약을 맺은 물량은 10억1000만 회분이고, 협상 중인 물량은 16억 회분에 달한다. 2위는 19억6500만 회분을 확보한 EU가 차지했다. 이는 남미국가 전체가 확보한 물량보다 많다. 3~5위는 인도와 코백스, 영국이 이름을 올렸다.
백신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인구 대비 확보한 물량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인구수보다 많은 백신을 확보한 국가는 캐나다와 영국, 미국, 일본, 호주, EU, 칠레뿐이었다. 캐나다는 인구 대비 5배에 달하는 물량을 확보했고, 미국과 영국은 각각 인구의 4배에 달하는 물량을 확보했다.
경제 규모에 따라 백신 확보 전략도 달랐다. 미국 정부는 ‘워프스피드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제약회사의 백신 개발을 지원하는 대신 선구매 권한을 받았다. 블룸버그통신은 워프스피드 프로젝트에 배정된 예산이 최소 180억 달러(약 20조 원)라고 전했다. 일본은 코로나19 백신 비용을 포함해 20조 엔(약 215조 원) 규모의 3차 추경 예산안을 추진하고 있다.
자금력에서 밀리는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한 중국과 러시아의 백신에 접근했다. 브라질은 중국 제약업체 시노백의 백신 3상을 국내에서 허용하고 임상 결과에 따라 승인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와 칠레, 페루 등도 시노백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베트남과 필리핀 등은 러시아산 백신인 ‘스푸트니크V’를 사들이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CGD 소속 레이첼 실버만 정책 연구원은 “현재 유망한 백신은 대부분 부유한 선진국의 구매 계약에 묶여있다”며 “내년 말까지 고소득 국가를 제외한 지역에 백신이 공급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