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보니 여자더라'…한계 극복한 '여성성' 조망하다

입력 2020-11-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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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립미술관 개관 5주년 기념전 '내 나니 여자라,' 전시

▲윤석남, '빛의 파종-999'. 완전하고 부족함이 없는 만수(滿數)인 일천(一天)에서 하나가 빠진 999개의 여성 목조각을 통해 온전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와 마주하도록 한다. 김소희 기자 ksh@
▲윤석남, '빛의 파종-999'. 완전하고 부족함이 없는 만수(滿數)인 일천(一天)에서 하나가 빠진 999개의 여성 목조각을 통해 온전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와 마주하도록 한다. 김소희 기자 ksh@
조선 22대 임금인 정조의 어머니이자 사도세자의 비(妃)였던 혜경궁 홍씨의 자전적 회고록인 '한중록'을 매개로 '여성'에 대한 동시대적이고 다양한 정서를 들여다보는 전시가 열린다.

수원시립미술관은 내년 1월 10일까지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 개관 5주년 기념전 '내 나니 여자라,'를 연다.

2015년 10월 8일 개관한 수원시립미술관은 수원의 역사와 문화의 가치를 오늘을 위한 의미로 재해석 해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과이자 수원 출신인 정월 나혜석에 대한 심층적 연구, 여성주의 작가와 작품에 대한 연구·수집 기능도 강화했다. 특히 수원시립미술관의 올해 기관 의제는 '여성'이다.

전시 제목 '내 나니 여자라,'는 '한중록'에서 발췌한 구절이다. '한중록'에 따르면 혜경궁 홍씨가 나기 전 태몽이 흑룡이라 당연히 사내아이일 줄 알았다고 한다. 그 기대에 반했기 때문에 '태어나 보니 여자더라'하는 회한 섞인 대목이 나오는데, 이는 여성들이 처한 불합리와 불평등을 상징한다.

문장부호 반점(,)은 고정된 여성성에 대한 전복을 통해 여성의 무한한 가능성과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려는 의미를 함축한다.

▲오화진, '대(代)에 답하다 '발산''. 여성을 통한 생(生)의 순환을 은유한다. (사진제공=수원시립미술관)
▲오화진, '대(代)에 답하다 '발산''. 여성을 통한 생(生)의 순환을 은유한다. (사진제공=수원시립미술관)

13인(팀) 작가가 모두 48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흩어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여성이라는 존재와 정체성 그리고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한다. 전시는 총 3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1부 '내 나니 여자라,'는 권력과 역사 속에서 그림자, 혹은 약자로 인식돼 온 여성 존재 자체를 재조명한다.

17일 전시장에서 만난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원류 윤석남 작가는 작품 '빛의 파종-999'(1998)에 대해 "999는 1000이라는 완벽한 숫자에 거의 다다른 것 같지만 1000까지 가기 힘들고 얼마나 걸릴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며 "한국 여성이 처한 현실과 맞닿아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한 사람 한 사람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윤 작가는 "희망이자 한국 사람의 색깔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장혜홍 작가는 혜경궁 홍씨의 탄생 285주년을 상징하는 총 285개의 패널로 작품을 구성했다. 명주 위에 검은색 수천 번의 붓질을 하며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쌓아 올렸다. 흑룡의 이미지도 작품에서 볼 수 있다.

▲이은새, '밤의 괴물들-비치워크'. '밤의 괴물들' 연작에서 이 작가는 고정된 여성상의 해체를 시도한다. (사진제공= 수원시립미술관)
▲이은새, '밤의 괴물들-비치워크'. '밤의 괴물들' 연작에서 이 작가는 고정된 여성상의 해체를 시도한다. (사진제공= 수원시립미술관)

이은새 작가는 '밤의 괴물들'을 연작으로 선보인다. 이 작가는 "고착된 이미지로 존재하는 여성성을 전복시키려 했다"며 "술 취한 여성들의 모습을 담아낸 것은 인식 밖에서 각자 존재성을 내뿜는 여성의 모습을 담아내려 한 것"이라고 했다.

2부 '피를 울어 이리 기록하나,'는 여성들의 표현과 표출, 기록을 다룬다. 남성들이 구축한 역사에서 여성의 언어와 경험은 대체로 공유되거나 전수되지 못한 점을 꼬집는다.

최슬기, 최성민으로 구성된 그래픽 디자이너 듀오 슬기와 민은 1961년부터 2020년까지 국내에서 출간된 '한중록' 열세 판본을 동시에 읽는 작업 '1961-2020'을 선보인다. '한중록' 원문에서 여섯 문장을 발췌한 후, 이 문장을 열세 권의 책에서 찾아 여섯 페이지로 이어 붙였다. 강애란 작가는 흐릿한 역사의 기록을 스스로 빛을 내는 책으로 구성한 '현경 왕후의 빛나는 날'을 선보인다.

3부 '나 아니면 또 누가,'는 여성의 사회, 정치 참여를 둘러싼 시각을 살펴보고, 이로부터 촉발되는 여성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한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이분법을 뛰어넘어 연대와 가능성을 모색한다.

▲임민욱, '봉긋한 시간', 단채널 영상, 5분 22초. 오브제의 파편들로 신체성을 모색하면서 사라지는 장소나 가려진 존재들의 기록을 시도한다. (사진제공=수원시립미술관)
▲임민욱, '봉긋한 시간', 단채널 영상, 5분 22초. 오브제의 파편들로 신체성을 모색하면서 사라지는 장소나 가려진 존재들의 기록을 시도한다. (사진제공=수원시립미술관)

임민욱 작가는 삶의 근원적 허무함에 대한 성찰로 이끄는 영상작업 '봉긋한 시간'과 설치작업 '솔기'를 선보인다. 임 작가는 "기울어진 공간과 길이를 사라짐과 부유하는 삶을 이미지화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특히 수원시립미술관은 나혜석 작품 10편 중 4편을 소장하고 있다. 신은영 학예연구사는 "나혜석을 필두로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해 왔다"며 "여성의 시대적 정서가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1월 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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