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마르크스가 남긴 명언(?) 중 하나다. 그가 말한 비극의 주인공은 나폴레옹이고 소극의 주인공은 나폴레옹 3세다. 나폴레옹 3세가 친위 쿠데타로 황제에 즉위한 것을 두고 삼촌의 흉내를 낸 광대라고 야유한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세대란 사태가 이 말을 떠올리게 한다. 꼬박 30년 전에도 닮은꼴 사태가 있었기 때문이다.
1989년 5월 노태우 정부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임대 기간을 최소 2년으로 늘리는 게 골자였다. 각계에서는 전셋값 폭등 우려를 제기했다. 하지만 개정안은 논란 끝에 결국 그해 12월 30일 통과됐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듬해 새 학기 이사철을 맞아 전셋값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1990년 3월 한 세입자가 강물에 투신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를 시발로 두어 달 새 10여 명의 세입자가 삶을 포기하는 비극이 이어졌다.
전세대란은 30년의 세월을 훌쩍 넘어 재현되고 있다. 지난 7월 말 국회를 통과한 임대차 3법의 후폭풍이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세 매물이 씨가 마르면서 전셋값이 폭등하고 있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는 제비뽑기로 세입자를 선정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집주인과 세입자 간의 분쟁도 급증하고 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지난 8~9월 임대차 분쟁 상담 건수는 1만7839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61% 증가했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명언처럼 전세대란 2탄에도 희극적 요소가 있다. 이번에 등장하는 광대는 홍남기 경제부총리다. 홍 부총리는 전세를 놓고 있던 아파트를 팔기 위해 얼마 전 계약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기존 세입자가 뒤늦게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매매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처지가 됐다. 게다가 본인이 현재 세 들어 살고 있는 아파트는 내년 1월까지 집주인에게 비워 줘야 할 형편이다. 오도 가도 못하는 전세난민이 될 판이다.
이런 사연이 공개된 뒤 정부는 서둘러 보완대책을 내놓았다. 공인중개사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앞으로는 매매계약서를 작성할 때 기존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및 포기 여부를 명시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인터넷 공간에서는 ‘홍남기 구제법’이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이처럼 경제정책 수장을 조롱거리로 만든 소극의 연출자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다. 그는 전세대란에 대한 국회 답변에서 30년 전 사례를 언급했다. “1989년에 임대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했을 때 시장이 안정화될 때까지 5개월 정도 걸렸다”는 게 김 장관의 설명이다. 그는 이어 “지금은 그때와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일정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하고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이 발언은 짚고 넘어가야 할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낸다. 정부와 여당은 어째서 30년 전의 전세대란을 다시 불러왔을까 하는 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법 개정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와 경고는 있었다. 화제가 됐던 윤희숙 의원의 ‘5분 발언’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김 장관이 30년 전의 사례를 기억하고 있었다면 사전에 시장 안정 대책을 마련했어야 마땅하다. 그러지 못했던 건 왜일까. 케네스 로고프의 책 제목처럼 ‘이번엔 다르다’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시장의 생리에 대한 무지와 오만의 소치라고 할 수밖에 없다.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은 그 무지와 오만이 선의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다. 30년 전에도, 이번에도 임대차법 개정의 취지는 ‘약자를 보호하자’는 좋은 뜻이었다. 하지만 착한 의도가 나쁜 결과를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이제는 진부하기까지 한 경구를 새삼 되새기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더불어 그 길을 포장하는 것은 ‘오도된 열정에 사로잡힌 사회공학도’들이라는 점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사회를 이상적인 모습으로 디자인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야말로 우리를 지옥으로 이끄는 안내자들이다.
이것이 이번 전세대란에서 정책 당국자와 정치권이 얻어야 할 교훈이기도 하다. 이번 정권엔 그런 사회공학도들이 유난히 많은 듯 보이기에 더욱 그렇다. lim5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