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로버 '디펜더(Defender)'의 부활에는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렸다.
70년 넘게 이어온, 랜드로버를 상징해온 모델의 현대적 재해석을 두고 수많은 마니아가 반기를 들었다.
“누가 등장해도 과거의 명성과 헤리티지(브랜드 유산)를 되살릴 수 없다”라는 이들의 고집도 철옹성 같았다. 폭스바겐의 클래식 비틀이 그랬다. 디펜더 역시, 어떻게 바꿔볼 수 없는 차였다.
지난해 세상에 나온 올 뉴 디펜더는 이런 우려를 무너뜨렸다.
랜드로버가 그려낸 디펜더의 현대적 재해석에 누구 하나 토를 달지 못했다. 언뜻 전혀 다른 새 차로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 디펜더의 유산이 곳곳에 드러났다. 마치 '숨은그림찾기' 같았다.
대표적으로 네모반듯한 전조등 속에 과거 디펜더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동그란 주간주행등을 심었다. 차 지붕 모서리를 뚫어놓은 '알파인 윈도' 역시 과거 디펜더의 상징이었다.
디펜더 차 이름 뒤에는 110과 90 등 숫자가 붙는다. 과거에는 축간거리를 인치로 환산한 숫자였다. 이제 수치는 다르지만, 숫자가 크면 롱 보디, 작으면 스탠더드라고 보면 된다.
국내에 먼저 선보인 모델은 4도어 타입의 110이다. 휠 베이스는 3022㎜에 달한다.
넉넉한 실내에 들어서면 고스란히 예전 분위기가 솟구친다. 투박한 배열 속에 다양한 첨단과 스마트 기기가 가득 담긴 점이 눈길을 끈다. 전혀 다른 모양새를 지녔으나 분위기는 그 옛날 디펜더 그대로다.
진흙과 자갈, 모래길 등 노면에 따라 구동력을 결정짓는 랜드로버 특유의 ‘터레인 리스폰스’ 다이얼은 없다.
더 낮은 기어비를 설정할 수 있었던 이른바 ‘트랜스퍼 변환기’도 사라졌다. 이제 간단한 버튼 하나로 모든 걸 결정할 수 있는 시대다.
험로 주행을 앞두고 버튼만 누르면 차 높이를 최대 145㎜ 더 끌어올릴 수 있다. 여기에 센터와 후륜 차동장치를 잠글 수도 있다.
지프 랭글러는 별도의 잠금 버튼이 달려있다. 그러나 디펜더는 알아서 잠그거나 해제하기를 반복한다. 이런 동작도 '센터 디스플레이' 모니터를 통해 고스란히 보여준다.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 시승은 유명산 일대에서 치러졌다.
꿀렁꿀렁 차체가 뒤틀리는 ‘모굴 타입’ 오프로드 코스에 들어섰다. 저속기어를 활용해 슬금슬금 잘도 타고 올라간다. 앞뒤 바퀴가 하나씩 공중에 떠 있어도 차동제한 장치(디퍼렌셜 록) 덕에 웬만해선 바퀴도 미끄러지지 않는다.
직렬 4기통 2.0 인제니움 디젤엔진은 최고출력 240마력, 최대토크 43.9kg‧m를 낸다.
V8 4.0리터 가솔린 엔진과 맞먹는 최대토크와 저속 기어가 맞물려 슬금슬금 경사진 노면을 긁어대며 경사면을 오르는 모습이 대견하다.
새 모델은 과거의 ‘보디 온 프레임’ 방식을 대신해 ‘모노코크’ 보디로 개발했다.
험로에서 이리저리 차체가 뒤틀려도 끈덕진 보디 강성을 보였다. 랜드로버는 과거 프레임 보디보다 3배 이상 강성이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타이어는 255/60R 20 사이즈. 굿이어 랭글러 AT다.
굿이어의 '랭글러' 시리즈는 오프로드용 타이어들이다. 랭글러 MT-R은 극단적인 험로주행용, 여기에 온로드 주행성능까지 염두에 둔 타이어가 AT-R이다.
디펜더가 장착 중인 AT는 이 AT-R보다 한 단계 더 온로드 주행 특성을 살린 제품이다.
아쉬운 점은 두 가지. 먼저 국내에는 아직 동일 사이즈의 랭글러 AT가 없다.
타이어를 교체하기 위해서는 일반 타이어 전문점 대신, 무조건 재규어 랜드로버 공식 딜러를 찾아야 한다. 파는 곳이 적다는 것은 자연스레 가격이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굿이어 랭글러 시리즈의 접지력은 정말 어마어마하다. 코너에서 비명을 질러대며 사이드 월을 짓눌려도, 결코 노면을 놔주지 않는다. 제법 과감하게 덤벼든 코너의 정점에서 머릿속 회전 곡선을 충직하게 지켜내며 탈출하는 것도 타이어의 접지력 효과가 컸다.
다만 극단적인 접지력은 거꾸로 엄청난 마모도를 동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차주라면 만만치 않을 타이어 비용도 염두에 둬야 한다.
올 뉴 디펜더의 국내 가격은 8590만~9180만 원이다.
국내 출시 이전부터 가격에 대한 논란이 컸으나 랜드로버 한국법인은 한국 수입차 시장이 이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국내 초기 도입물량(300대)이 완판된 것도 이런 반응을 뒷받침한다.
올 뉴 디펜더는 멀리서 보면 과거 클래식 디펜더와 전혀 다른 차로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서면 과거의 헤리티지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아가 차 안에 올라서면 과거의 명성과 랜드로버의 유산을 고스란히 다가온다. 디펜더는 여전히 디펜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