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줌] “희생하는 그림만 필요하더라”…간호사 목소리 듣지 않는 언론과 사회

입력 2020-09-20 09:15 수정 2020-09-2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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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련 간호사 "코로나19 상황, 희생하면서도 '웃는 간호사' 그림만 원하더라"
노동 환경과 처우 개선, 모두의 '건강권'과 연관
간호사 목소리 대변해야 할 '간호협회' 제 역할 못 한다 지적도

"대구에서 우리는 코너에 몰린 상태로 환자들이 무너지는 걸 지켜봐야 했다. 부족한 인력과 교육, 일선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관리자와 책임자, 존중받지 못하는 간호사 안전과 전문성. 우리도 환자도 위험했다. (문제는) 그런 상황이 언론에 전혀 나오지 않았다. 지치고 땀에 젖었어도 '웃는' 모습만을 원했다. 인터뷰하더라도 우리의 문제의식은 나오지 않았다." - 3월 '코로나19' 현장에서 근무했던 김수련 간호사

코로나19부터 의사 파업까지 의료 이슈가 산적한 요즘, 의료인이자 코로나19 현장의 또 다른 주역인 간호사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이투데이가 만난 일선 간호사들은 언론이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중환자실 경력 5년 차로, 올해 3월 대구 코로나19 현장에 있었던 김수련 간호사는 "간호사도 엄연한 의료인인데, 언론은 현장 전문가 의견이 필요할 때 간호사 대신 현장에 실제 와본 적도 없는 사람을 데려다 의견을 구하더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 조사결과, 올해 1월 1일부터 신문·방송사에 보도된 간호사 관련 뉴스 중에서 간호사 의견을 직접 인용한 비율은 6.05%에 불과하다.

▲유연화 간호사는 이투데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간호사를 돌봄 서비스적인 면이 아닌 의료인으로 봐줬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안유리 수습기자 inglass@)
▲유연화 간호사는 이투데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간호사를 돌봄 서비스적인 면이 아닌 의료인으로 봐줬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안유리 수습기자 inglass@)

유연화 간호사는 언론이 단편적인 모습만 다루며, 의료 현장의 진짜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유연화 간호사 역시 대구 코로나19 현장에서 최일선에 있던 간호사다. 유연화 간호사는 이투데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의료진의 부실한 밥이 논란이 된 적 있다. 그때 기자분들이 밥 사진을 보내줄 수 있는지 물어보더라. 사실 그때 밥보다 보호구가 더 급했다. 그런데 언론의 관심은 밥에만 있었다"라고 전했다.

김수련 간호사 역시 “부족한 인력과 존중받지 못하는 간호사 안전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했지만, 땀 흘리고 희생하면서도 ‘웃는 간호사’ 그림만 원하더라”고 하소연했다. 김수련 간호사는 힘든 노동 환경이 "본론은 잘린 채 정부 비판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우리는 안전과 최소한 '이렇게 일하다 죽겠다' 이런 마음은
안 드는 업무 강도를 요구한다.
- 김수련 간호사

▲김수련 간호사는 간호사에 대한 단편적인 시선을 거두고 노동 문제와 처우개선에 관심을 가져달라 강조했다. (정윤혜 인턴 yunhye0318@)
▲김수련 간호사는 간호사에 대한 단편적인 시선을 거두고 노동 문제와 처우개선에 관심을 가져달라 강조했다. (정윤혜 인턴 yunhye0318@)

현행 의료법 기준으로 병원 간호사 정원 비율은 입원환자 2.5명 당 간호사 1명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에서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 김수련 간호사는 "실제 비율이 1:3에서 1:7까지 간다"고 말한다. 이보다 더 심각한 곳도 많다. 서울 소재 요양병원 간호사 A(57) 씨는 "현재 일하고 있는 병원에서는 간호사 1명이 환자 35명을 본다. 요양병원의 경우, 이보다 더 많은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신규 간호사 교육도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 김수련 간호사는 "훈련된 간호사를 기를 수 있는 트레이닝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장에서는 인력 부족으로 중간 연차 간호사들이 가장 중증 환자를 보면서 바쁜 와중에 신입 교육까지 맡는다. 이는 불충분한 신규 교육을 낳고 결국 신규 간호사의 퇴사로 이어진다. 병원간호사회의 2019년 병원 간호인력 배치현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신규 간호사 이직률은 45.5%에 이른다.

김수련 간호사는 "실제로 업무를 경감시킬 수 있는 법이 필요하다"며 "업무 범위·자격 수준을 정하고, 간호사:환자 비율을 지키지 않는 의료 기관에 실질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PA 간호사 문제, 이대로는 안 된다"

PA(진료보조인력·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는 시술, 처치, 처방, 진료 기록지 작성 등 의사 업무를 수행하는 간호사를 말한다. 현행법상 간호사가 의사 업무를 수행하면 불법이다. 하지만 의사 인력이 부족한 흉부외과 등에서 이미 PA는 필수 인력으로 자리 잡았다. 수면 아래 있던 PA는 지난달 전공의 파업 당시 의료 공백을 메운 것으로 알려지며 주목을 받았다.

유연화 간호사는 "PA 문제는 간호사마다 의견이 분분할 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PA가 현재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어 합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수련 간호사는 “PA가 없으면 흉부외과 같은 필수과가 돌아가지 않는 병원이 많다. 이런 (필수적인) 일을 하면서 범죄자인 집단이 어디 있는가?”라고 말하며 PA 합법화를 주장했다. 김수련 간호사는 또 ”만약 PA에게 이런 일을 맡기는 게 부당하다고 판단하면 이 직군을 없애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간호협회, 현장 간호사 목소리 대변 못 해"

간호사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대한간호협회(간협)가 제 역할을 못 한다는 주장도 있다. 요양병원 간호사 A 씨는 "20년 넘게 간호사 생활을 하면서 간호협회가 해준 게 하나도 없다고 느낀다"고 했다. 김수련 간호사는 "대표가 대표성이 없다"며 협회장 선출이 대의원 투표로 이루어지는 '간선제' 방식을 문제로 지적했다.

2018년부터 지금까지 간호협회장은 신경림 회장이 맡고 있다. 신경림 회장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도 간호협회장을 연임한 바 있다. 그는 올해 38대 회장 선거에도 단독 출마했다. 만약 신경림 회장이 이번에 당선되면 8년간 간협을 이끄는 셈이다. 간호협회는 17일 정기대의원총회를 열어 회장을 선출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일정을 연기했다. 간호협회는 대표 선출 방식 논란에 대한 질문에 "간선제, 직선제 등 선출 방식에 관한 연구 용역을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펜실베이니아대 간호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간호사:환자 비율이 낮아질때 퇴원환자 1000명당 환자의 사망 비율도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유리 수습기자 inglass@)
▲펜실베이니아대 간호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간호사:환자 비율이 낮아질때 퇴원환자 1000명당 환자의 사망 비율도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유리 수습기자 inglass@)

간호사 노동 문제는 우리 모두의 '건강권'과 관련이 있다. 간호사들이 건강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때, 환자도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실제로 간호사:환자 비율이 사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김수련 간호사는 "모두가 삶의 한순간에 병원을 간다. 그때 너무 지쳐있는 간호사를 만난다면 여러분이 받을 간호서비스의 질이 결코 좋지 않을 거다"라며 간호사 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유연화 간호사 역시 "간호사 노동 문제는 간호사만의 일이 아니라 여러분의 건강과 연관된 일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시민들의 관심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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