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이 공교롭게도 경쟁사인 LG화학이 배터리 사업의 분사를 발표한 17일 1982년부터 진행한 자사의 배터리 사업의 역사를 공개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배터리 사업과 관련해 LG화학과 진행 중인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배터리 사업의 후발주자’가 아닌 ‘기술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한 회사’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은 이날 “배터리 사업을 향한 꿈은 선경그룹이 인수한 대한석유공사가 사명을 ‘유공’으로 바꾼 1982년 시작됐다”며 “당시 ‘종합에너지 기업’이라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에너지 축적 배터리 시스템’을 미래 사업으로 선정한 것이 그 출발선”이라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사업을 처음 구상한 시점이 1982년 12월 9일에 열린 ‘최종현 선대회장과 유공 부과장 간담회’라고 설명했다.
최 선대회장은 이 자리에서 “석유가 지하자원이므로 그 사업 또한 한계가 있고 더욱이 공해문제가 뒤따르고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방향을 바꿔야 한다”며 배터리 사업을 처음 구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유공은 정유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지금의 대덕 기술혁신연구원인 ‘기술지원연구소’를 1985년 설립했으며, 1991년부터 전기차에 필요한 첨단 배터리를 개발하기 시작한다. 배터리 개발에 착수한 지 2년만인 1993년에는 한 번 충전으로 약 120㎞를 달릴 수 있는 전기차와 배터리 개발에 성공했다.
SK이노베이션은 이 주장의 근거로 1993년 1월 유공이 전기차를 개발했다고 보도한 신문 기사를 인용했다.
이 기사는 “유공이 전기차용 첨단 축전지의 실용화를 위해 시험용 전기차를 제작, 운행 시험에 들어갔다”며 “기존 5인승 자동차를 유공 자체 기술진이 개조해 모터와 컨트롤러 축전지 등을 장착한 유공의 전기차는 현재 울산 석유화학단지에서 주행시험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 이 기사는 “첨단 축전지의 실증 시험용으로 유공이 제작한 전기차의 목표 성능은 최고 속도 시속 130㎞, 1회 충전 주행거리 120㎞”라고 설명했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은 “해당 기사를 통해 1992년 당시 세계적으로 배터리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캐나다의 HBS, 독일의 HBB, 영국의 클로라이드, 일본의 NDK 등 4개사에 불과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LG화학보다 앞선 기술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했다는 입장을 부각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SK이노베이션은 2012년 세계 최초로 배터리의 힘과 주행거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양극재를 구성하는 금속인 니켈-코발트-망간 비율을 각각 60%, 20%, 20%로 배합한 NCM622 양극재를 적용한 배터리를 개발했고 2014년 양산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이보다 진화한 NCM811 양극재를 적용한 배터리도 2016년 세계최초로 개발하고 2018년부터 양산 중”이라며 “더 나아가 NCM9 1/2 1/2(구반반) 양극재를 적용한 배터리 개발에 지난해 세계최초로 성공했으며, 현재 OEM사의 수요에 맞춰 2022년 양산을 계획 중”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사업의 역사를 공개한 것은 LG화학과의 소송에서 핵심 인력 영입을 통한 기술 탈취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행동으로 풀이된다.
이는 배터리의 대규모 상업생산이 늦어지면서 후발주자라는 꼬리표가 붙었지만, 배터리 개발의 역사가 긴 만큼 LG화학의 기술을 탈취할 이유가 없다는 기존 입장을 변함없이 재차 강조한 것이다.
양사의 합의 가능성이 크지 않은 가운데 다음 달 5일(현지시간)로 예정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 판결에서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 중 어떤 회사가 승소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