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강도 높은 재건축 규제로 사업 추진이 힘들어지면서 리모델링 쪽으로 개발 방향으로 튼 아파트 단지들이 늘고 있다. 특히 용적률이 높아 재건축 수익성은 낮지만 입지나 교육, 인프라가 좋은 서울 강남권에서 리모델링 사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송파구 아파트 단지 중심으로 리모델링 속속 추진
14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송파구 오금동 아남아파트는 지난달 리모델링 사업 공사를 위한 이주에 돌입했다. 1992년 지어져 올해로 준공 28년차를 맞은 아남아파트는 리모델링 공사를 통해 기존 299가구에서 328가구로 단지 규모를 키운다. 오는 11월 이주를 마치고 연내 착공할 계획이다. 분양 시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송파구에선 현재 아남아파트를 비롯해 모두 5개 단지, 총 2578가구가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 중이다. 아남아파트와 같은 해에 준공된 송파동 성지아파트(298가구)는 지난 10일 권리변동계획을 확정하는 총회를 열었다.
송파구 리모델링 사업지 중 규모가 가장 큰 문정시영아파트(총 1316가구)는 현재 1차 안전진단을 진행 중이다. 준공 30년을 이미 넘긴 이 단지는 리모델링을 마치면 1512가구로 200가구 가까이 가구 수가 늘어난다.
리모델링 업계 관계자는 "재건축이 어려운 단지들이 리모델링으로 우회하면서 리모델링 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GS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한 삼전현대아파트는 지난 7월 수직증축(기존 아파트 위로 2∼3개 층을 더 올려 짓는 것) 리모델링이 가능하다는 판정을 받고 1차 안전진단을 마무리했다. 준공 24년차인 문정건영아파트는 이달 조합을 설립하며 리모델링 사업에 시동을 걸었다.
◇주거환경 개선 기대감 '쑥'… 집값도 상승세
강남구 개포동 개포우성 9차와 서초구 잠원동 잠원훼미리아파트도 리모델링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개포우성 9차는 준공 28년인 지난해 착공해 현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입주는 내년 하반기 가능할 전망이다. 1차 안전진단에서 B등급으로 수직증축 가능 판정을 받은 잠원훼미리아파트는 현재 건축심의 절차를 밟고 있다.
리모델링 기대감에 아파트값도 강세다. 개포우성 9차 전용면적 84㎡형은 지난 2월 19억9000만 원에 거래됐지만 현재 호가는 최고 24억 원에 달한다. 서울 집값이 전반적으로 오름세이긴 하지만 리모델링 이후 주거환경 개선 기대감과 강남권이라는 프리미엄이 함께 작용하면서 주변 단지들보다 상승폭이 크다는 게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강동구에선 지역 1호 리모델링 추진 단지인 둔촌동 둔촌현대1차는 올해 초 사업승인을 받았다. 1984년에 지어진 이 단지는 가구수 증가형 수평증축 리모델링을 통해 498가구에서 572가구 규모로 탈바꿈한다. 둔촌현대1차 리모델링조합 관계자는 “수직증축이 아닌 수평증축 방식으로 지난해 9월 사업계획안을 신청한 뒤 4개월 만에 승인을 받으면서 사업 속도에 탄력이 붙은 상태"라고 말했다.
◇안전진단 등 기준 덜 까다롭고 내력벽 철거 허용 땐 확산 기대
강남권 아파트 단지들이 리모델링 사업에 눈독을 들이는 건 재건축 사업에 비해 추진 과정이 비교적 덜 까다로워서다. 리모델링은 허용 연한이 15년으로 30년인 재건축에 비해 짧다. 안전진단 기준도 재건축은 D등급 이하를 받아야 하지만 리모델링은 B등급인 경우 수직증축, C등급이면 수평증축을 할 수 있다.
특히 일반분양 물량이 30가구 미만이면 조합이 임의로 분양할 수 있어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규제도 피할 수 있다. 30가구 이상 분양하면 사업계획 승인을 받은 뒤 청약 형식으로 공급해야 한다. 당초 43가구를 일반분양하려고 했던 잠원훼미리가 29가구로 줄인 것도 사업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다. 아남아파트와 삼전현대아파트 역시 분양 물량이 30가구를 넘지 않는다.
리모델링 사업 기대감은 올해 하반기에 정부의 내력벽 철거 허용과 관련한 안전성 검토가 마무리되면 더 커질 전망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재건축은 조합 설립 이후 소유권 이전등기까지 입주권 거래가 불가능하지만, 리모델링은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수요자들의 관심이 높다"면서도 "리모델링 단지 규모가 작은 경우 최근 새 아파트의 핵심 시설로 떠오르는 커뮤니티시설 등을 담기가 어려워 시세 상승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