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피카프로젝트에서 '아트, 하트, 화투 그리고 조영남' 전을 연 조영남을 만나 지난 사건에 대한 소회를 들었다.
"재판이 끝나고 나니 '아, 이게 내 팔자다' 싶었죠. 내가 나이 들고 소리도 안 나니까 그림을 그려서 먹고 살라고 국가가 5년 동안 화가로 키워줬다고 생각해요. 국가가 엄청난 비용을 들여 내 선전을 해줬죠. 그 일이 아니면 지금처럼 제가 호화롭게 전시를 했겠어요? 안 고마울 수가 없죠."
조영남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조수의 도움을 받아 그린 21점을 팔아 1억5000여만 원을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조영남이 직접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자주 노출해 대작을 모르게 했다며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지만, 2018년 8월 2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에서도 보조자인 대작 화가를 사용한 사실을 고지해야 할 의무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논란이 된 작품은 '극동에서 온 꽃'(1998)과 '대한 시인 이상을 위한 지상 최대의 장례식'(2008)이다. 조영남은 직접 두 작품의 어느 부분이 대작 의혹을 받았고 어느 부분에서 결백하다고 주장했었는지 해명했다.
"화투 그림이 손이 많이가요. '극동에서 온 꽃'은 그림 실력이 뛰어난 그 친구한테 아트 형식을 알려주고 그려달라고 했어요. 항아리하고 꽃을 상정해서 아이디어도 줬고 제가 만든 오리지널 작품이 있는데 그걸 카피하라고 했죠. 데미안 허스트, 앤디 워홀 같은 작가들은 파이널 터치도 하지 않는데 나는 최소한 파이널 터치를 했으니 아무 죄가 없다고 한 거죠."
조영남은 5년여 동안 무죄 판결을 받으려고 노력했던 이유에 대해 사기죄로 기소돼 승복하면 평생 사기꾼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것은 아닌 것 같았다고 했다.
"어른들이 화투를 가지고 놀면 패가망신 당한다고 하잖아요. 화투를 너무 오래 가지고 놀았나봐요. 대법원 공청회에서 5분의 최후 진술의 기회 할 때 이 말 하다가 울먹였어요. 내 평생의 수치스러운 순간이에요."
조영남은 지난 5년 유배 생활 하는 동안 그림에 더욱 집중했고, 책을 두 권이나 썼다고 했다. 지난 7월 출간한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에 이어 '이상과 5인의 아이들'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이상이 피카소, 말러, 니체, 아인슈타인과 그룹사운드를 만들어 공연을 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고등학교 때 미술부장을 했고, 대학 3학년 때부터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아마추어 화가예요. 취미가 그림 그리기인 미술 애호가로서 영감이 떠오르는 한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한 가지 포부가 있다면 피카소처럼 살아있을 때 잘 팔고 즐기는 거죠."
지난 1일 개막한 이번 전시는 1960년대부터 논란이 된 화투 작품까지 조영남의 작품 50여 점을 소개한다. 1973년 인사동 한국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한 조영남은 지금까지 50여 회의 개인전을 했지만, 1960~80년대 작품은 이번에 처음 공개한다. 서울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도 5년 만이다.
앞서 충남 아산갤러리에서는 지난달 '현대미술가 조영남의 예술세계'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열었다. 내년 8월까지 1년간 이어지는데 공모를 통해 선발한 조수가 작업하는 과정을 전시장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도 계획하고 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송자호 피카프로젝트 대표는 조영남의 전시를 열게 된 이유에 대해 "조영남 선생님 초대를 받고 댁에 갔는데 작품이 2000여 점이 있었다"며 "시대별로 작품 설명해주시는데 감명 깊게 들었고, 전시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피카프로젝트가 일반적 갤러리와 달리 진보적이고 재밌는 프로젝트를 많이 하려고 하는데 뜻이 맞았다"며 "조영남 선생님이 50년간 그린 작품을 직접 선보이고 소개한다면 대중들도 미술 세계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