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 대법관의 후임으로 8일 이흥구 후보자가 취임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의 수가 10명을 넘어서게 된다. 진보 성향의 대법관 수가 늘어나면서 진보 색채가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출신만으로 판결 방향을 예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권 대법관이 퇴임하면 김명수 대법원장과 12명의 대법관 가운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은 박상옥ㆍ이기택ㆍ김재형 3명만 남는다. 이 후보자가 대법관으로 취임하면 대법원 재판부는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우리법연구회ㆍ국제인권법연구회ㆍ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으로 절반 가까이 채워진다.
◇‘진보 성향’ 대법관 과반…눈에 띄는 진보적 판결
김 대법원장은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고 국제인권법연구회에서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박정화ㆍ노정희 대법관은 우리법연구회, 김상환 대법관은 국제인권법연구회에서 각각 활동했다.
김선수 대법관은 민변 부회장 출신이다. 특히 이 후보자는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은 전력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치적 편향’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진보 성향의 대법관이 늘면서 최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사건, 이재명 경기지사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등에서 진보적 판결이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지난 2월 육체노동 연한을 기존 60세에서 65세로 30년 만에 변경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도 눈에 띈다. 경영상 어려움을 따지는 신의성실의 원칙과 통상임금 판결에서도 기업들이 줄줄이 패소하고 있다.
◇'‘보수’ 대법관들의 ‘전향적’ 의견…성향 따른 판결 단정 어려워
그러나 대법관들의 출신 배경만으로 판결 방향을 예단하는 것은 기계적인 추측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 후보자도 인사청문회에서 “우리법연구회는 노동 법리와 재판제도 등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모임이며 좌편향을 지닌 판사들의 모임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판결 가운데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 대법관들이 예상과 다른 전향적인 의견을 내놓은 사례가 적지 않다. 전교조 사건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3명의 대법관 중 박상옥ㆍ김재형 대법관이 정부의 법외노조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두 사람은 이른바 ‘일자리 대물림’ 논란이 일었던 현대ㆍ기아차 산재 사망자 유족 특별채용 단체협약 사건에서도 단체협약에 따라 유족 자녀를 채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김재형 대법관은 이재명 경기지사 사건에서 TV 토론회에서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며 이 지사를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지명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조희대 전 대법관도 전향적 판결을 여럿 내놨다. 조 전 대법관은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서 정한 장애의 종류 및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틱 장애’에 대한 장애인 등록을 거부한 처분을 취소했다.